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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납량특집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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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6.30 07:0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최근 서울에서 있던 친지의 결혼식에 갔었다. 코로나 시국이 엄중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성혼을 마냥 미룰 수도 없는 노릇이라 대중교통이 아닌 자차로 이동하고 식사도 거르고 내려오며 새삼 격세지감을 느꼈다.

이날 한동안 잊고 있던 경험을 했는데, 혼주인 고모부께서 오랜만에 처조카를 보시자마자 반갑게 악수를 하시며 손을 꼭 쥐고 먼 길 와준 감사를 하셨다. 그게 거의 4개월 만에 처음으로 하는 악수라는 걸 곧바로 알아챌 만큼 악수로 마주잡은 손이 반갑기도, 낯설기도 했다.

요즘 같은 코로나 시국엔 목례를 하거나 악수 대신 멋쩍게 웃으며 주먹을 마주 댄다. 반가운 사이엔 포옹을 하기도 했는데 요즈음은 팔꿈치를 맞댄다. 멋쩍기는 마찬가지다.

악수가 이토록 낯설다니.

예전부터 한. 중. 일 등 동아시아권은 인사할 때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피하는 경향이 짙다. 두 눈을 빤히 쳐다보기보다는 고개를 숙이는 목례가 기본이고, 상대를 건드리는 대신 자신의 두 손을 맞잡거나 손을 모으는 것이 동아시아권의 인사라면, 서양식 인사는 기본적으로 신체접촉을 중요시한다. 눈을 반드시 마주치며 악수를 하고, 라틴 문화권은 이른바 ‘볼 키스’라며 친한 사이끼리 서로의 볼을 맞대고 입으로 입맞춤소리를 내며 반가움을 표한다. 가까운 사이라면 포옹은 당연하고.

서양과 동양의 인사문화가 다른 것도 전염병의 초기 확산세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한국에서도 흔한 악수지만, 세세하게 변천해왔다. 일반적인 악수와 달리 웃어른과 하는 악수라면 손아랫사람이 허리를 굽히며 오른손 아래 왼손을 받치곤 했는데 이게 우리나라와 베트남에서 유독 그런다는 걸 나중에 커서야 알았다. 유학시절 교수에게 처음 악수하며 허리까지 굽히던 건 거의 한국학생들이었다. 또 손윗사람이나 여자한테는 먼저 악수를 청하지 않고, 상대가 청하면 그때 악수를 하는 규범도 있다.

악수할 때 손을 꽉 잡지 않으면 그 또한 결례라 여겨지던 시절도 있었는데, 대통령 행사 때는 반대로 대통령과 악수할 땐 손을 내밀기만하고 꼭 잡아선 안 된다는 룰이 있는걸. 수백 번 악수를 했던 어느 날 밤, 악수만으로도 손이 붓는다는 사실에 그제야 공감했다.

미묘한 신체접촉도 오묘한 오해를 살 수 있는 요즘엔 악수는 ‘적당한’ 악력으로 ‘적당히’ 흔들고 ‘적당한 만큼’ 눈을 마주쳐야 모범답안이자 표준모형에 가깝다. 이 중 하나라도 표준에서 벗어나면 아주 가까운 사이거나 건성인 인사가 된다. 서양 인사였던 악수도 이렇게 한국에서 세월과 풍토를 거치며 다듬어져 왔다. 그런데 거리낌 없이 악수하던 시절이 추억이 될 것만 같다.

음악계의 화두가 여전히 코로나인 것이 슬픈 계절이다. 연초부터 창궐한 코로나19로 대부분의 상반기 연주를 취소나 연기할 때만 해도, 전 세계적 팬데믹이 날씨가 따뜻해지는 여름부터는 수그러질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한때 따뜻한 차를 마시거나 더운 날씨가 코로나 예방이나 사멸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던 SNS를 비롯한 수많은 매체들을 통해 잠시 희망을 가졌기에, 한여름 북반구에 여전한 코로나의 모습은 더 공포스럽기만 하다.

상반기 연주를 취소할 당시에 대부분의 연주를 여름이 시작되는 하반기로 변경을 했는데, 이게 다시 골치 아픈 폭탄으로 돌아왔다. 3-5월 공연을 6-7월로 미뤘는데 코로나는 여전하니 개인이나 민간 오페라단을 비롯한 음악단체들은 어렵사리 취득한 대관을 포기하는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거리두기로 좌석의 1/4만 운용 가능해 손익분기는 커녕 공연 날수가 늘어나면 적자가 증가하는 구조를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요즘 공연에 투입되는 연주자들의 대화는 관객의 유무이다. 전염가능성을 아예 차단하는 무관중 녹화나 실시간 중계만이 코로나 위협에서 안전한데. 사실 국. 공립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무관중을 소화해 낼 여력이 있는 민간단체들이 몇이나 될까 싶다. 간신히 열리는 공연에서도 주요 화두는 이렇다.

‘무관중인가 거리두기인가’ 또는 ‘무관중이라면 실시간 중계인가 녹화 발췌인가’
객석에 사람대신 카메라 불빛만 깜빡인다.

얼마 전 지인의 SNS에서 관객이 가득한 공연사진을 보고 환호했는데, 자세히 보니 몇 년 전 공연 추억을 공유한 것이었다.

사람 가득한 객석이 그토록 새삼스러울 수가 없었다.

멀지 않은 미래에, 객석을 가득 메운 것이 사람이 아닐 수 있고, 여태껏 못 본 짓을 인사라고 나누는 상상에 순간 등골이 오싹하다. 장마를 맞이한 한여름. 참 별게 다 납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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