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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장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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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06.12 17:43
  • 기자명 By. 뉴스관리자 기자

“골라! 골라!”목에 핏대 세우고 에누리 없다고 애써 강조하며 팔려고 애쓰는 장사꾼들과 조금이라도 저렴하게 사려는 사람들, 한 시대를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을 가장 현실적으로 그리는 곳이며 사람의 정을 ‘덤’으로 얻는 곳, 시장(市場)이다. 대전역 앞쪽에 위치한 시장이 통틀어 ‘중앙시장’이다. 하지만 범위가 애매하다. 대전역 바로 옆과, 원동일대 간선도로변의 상점과 노점상 밀집지역, 그리고 그 안쪽의 크고 작은 점포들이 포도송이처럼 모여 있는 곳, 모두를 ‘중앙시장’이라고 한다.

애매한 범위의 ‘중앙시장’시장 속의 ‘시장 밖 사람들’

중앙시장의 첫 인상은 우선 늙음이다.‘뽀글’파머머리에 알록달록한‘몸빼 바지’로 치장한 할머니들의 난장이다. 일흔은 가볍게 넘겼을 할머니들이 각 상점 앞의 터줏대감이다. 터줏대감이라고는 하지만 자신의 몸이나마 제대로 움직일지 의심스러운 좁은 터이다.

하지만 판매 상품은 젊고 싱싱하다. 난장 여주인의 늙음과 크게 대비된다. 텃밭에서 직접 가꾼 미나리, 오이, 깻잎, 상추 등의 야채류를 가득 담은 바구니가 탐스럽다. 바구니 옆에 종이상자를 찢어 만든 가격표에 적힌‘천 원’이라는 금액이 오히려 순박하다.

옛 대전관광호텔 옆 약국 간판아래 자리를 편 할머니. 하얀 서리를 맞은 머리와 굴곡진 얼굴, 거뭇한 손에 세월이 그대로 박혀 있다.

“저리가, 난 아무것도 몰라. 이런 거 하면 또 단속이나 나오지”

이름도 나이도 묻지 말라는 70대의 할머니는 그러면서도 질문에 대한 답변은 또박또박하다.

“나이가 많아서 올해만 하고 안하려고 해. 그러니 그런 거 신문에 쓰지마.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나온 거야… 힘들게 자리 잡아도 단속 나오는 사람이 오면 정리해야 해… 더구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시장에 오지 않지. 세상이 변한 걸 누굴 탓해… ”

푸념일까, 체념일까? 순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칭 사진작가를 만나는 행운(?)을 누렸다. 담벽에 그동안 촬영한 장삼이사의 초상화 사진을 걸어놓고 당당하게 ‘작가 이근수’라는 명함을 내걸었다. 사진작가 할아버지의 독설은 프로페셔널한 면이 있다.

“지금 카메라는 똥카지, 똥카. 개나 소나 디지털 카메라 인가 뭔가 들고 다니면서 어중이떠중이 모두 사진작가 된다고 하는 모습 보면 화가 나… ”

“세상이 변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이 필요가 없지. 세상 변하는 속도에 우리는 맞출 수 없으니, 나이가 먹어서 오래는 못해. 단속하는 사람들 눈치도 봐야 하고… ”

변한 세상에 대한 원망을 덮어 씌우려는 듯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니 가보라고 손짓한다.

시장 속의 ‘시장 안 사람들’

중앙시장에는 너그러움과 배려가 있다. 원동 간선도로 변의 ‘독일약국’은 40년을 한결같이 똑같은 장소를 지키고 있다. 그 문 앞에는 다슬기와 채소를 팔고 있는 한 할머니가 더불어 자리 잡고 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고, 예전부터 오는 분들이에요, 어려운 분들이죠”

할머니들이 앉아 계시면 약국을 찾아오는 손님들이 불편해 하실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쉼없이 나오는 답변이다. 즉답은 오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해 왔다는 뜻이다.

“한 번씩 시민들이 불편을 토로해 동구청에서 단속이 나오지만 약국 골목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도로 점용료를 내기 때문에 결국은 상점 앞에 자리 잡은 돈 없는 할머니들만 단속 대상이 되죠”

중앙시장의 시장 안 사람들은 대를 이어 장사한다.

십년 전에 철거된 대전역 보도육교를 중심으로 양쪽 길에 각각 하나씩 승차권 매표소가 있다. 그 중 하나인 매표소는 이제는 카드 충전을 주로 담당하고 복권이나 신문을 판다.

“우리도 지하철 생긴 후로는 먹고 사는 게 힘들어요. 수입이 1/4로 줄었으니까. 노인 분들은 다 지하철 이용하고…기본적인 생활이 힘들죠”

엄살이라고 볼 수는 없겠다. 교통체계 등 세상의 변함에 대한 푸념인 것 같다. 아버지를 이어 승차권 매표소를 운영하는 40대 초반의 아주머니는 어렸을 때 느꼈을 법한 아버지 때의 호황(?)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틀림 없어 보였다. 상대적으로 더 불황을 탈 법도 하다.

“방법이 있나. 힘 있는 사람들이 더 신경을 써 줘야지. 나도 몇 번 불편한 점 때문에 신고도 했는데 들은 척도 안합니다. 글 잘 써서 해결해 주세요”

길거리 난장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느끼면서도 어느 덧 같은 장사꾼이라는 동료애를 느끼는 듯 했다. 연대감이라고나 할까?

중앙시장 이용자인 시민의 반응은 의외였다.

이미숙(45)씨는 “불편하지만 모두 어려운 사람들이잖아요. 윗사람들이 좀 더 신경 써야지”라고 말했고, 김경화(59)씨는 “사람들이 이렇게 북적북적해야 시장에 온 느낌”이라고 지금의 모습을 나쁘지 않게 생각했다.

시장에서 ‘시장 안의 사람’이나 ‘시장 밖의 사람’이나 자신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세상의 흐름을 알든 아니면 세상의 속도에 뒤처졌더라도 그 나름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더불어가면서 말이다. 다음과 같은 지적은 중앙시장의 안과 밖의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가는 것이 현명한 일이라지만,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평가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어리석어서가 아닌 속도가 지나치게 빠른 것이며 발맞추지 못하는 이들에게 손 내밀 수 없는 미성숙한 사회를 탓해야한다”

/김송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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