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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검찰총장과 절차기억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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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7.08 16:21
  • 기자명 By. 임규모 기자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수사는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진행하면서 기자들에게 했던 말이다. 흔히 할 수 있는 상식적인 말이라고 생각되지만 실은 검찰이 가장 애용하는 말 가운데 하나다. 이 말을 심리학 용어인 절차기억(procedural memory)에 적용하여 설명하자면 “내 본능대로 수사하고 있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절차기억은 특정 행동이나 감정적 반응을 학습함으로써 어떤 상황에 부딪혔을 때 자동적으로 학습된 반응을 보이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좋은 습관을 강화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능적으로 나쁜 습관도 버리기 힘들게 만들어 융통성과 창의력을 증발시킨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절차기억은 군대나 관료조직에서 발생하는 맹목적이고 부정적인 관행을 만드는 요소다. 우리 사회에서 절차기억을 가장 많이 갖고 있는 집단은 단연코 검찰이라고 할 수 있다. 검사는 선출된 권력자가 아니다. 국민에게 제대로 견제를 받지도 않는다. 다만 검사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관례와 상급자의 지시를 맹종하는 맹견으로 오랫동안 비유되어 왔다.

누구든지 잘못된 수사의 그물에 걸리면 맹수가 우굴 대는 우리에 갇힌 것과 같은 공포를 느끼게 마련일 것이다. 대통령을 포함해 대다수의 국민들이 검찰의 의도적인 수사와 기소의 포위망에 갇힐 수 있다는 상상은 당연히 허구가 아니다.

스스로 주어진 권력이 무엇인지를 잘 아는 검찰이 자신들에게 부여된 막강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것은 관행이 되었다. 그러니 검찰에게 어쩌면 창의적인 학습기억이나 좋은 신념기억 따위를 기대하는 것은 애시 당초 허망한 일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측근 비리 수사를 둘러싸고 벌어진 추미애 법무장관의 수사지휘권 발동에 대해 윤 총장은 전국 검사장 회의를 통해 항명에 가까운 결론을 이끌어냈다는 비난에 직면했다. “검찰총장의 지휘 감독 배제는 위법 또는 부당하다”는 검사장들의 의견은 옳고 그름을 떠나서 국민에게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수사자문단 운영 중지는 수용해야 하되 장관의 수사지휘는 부당하다는 검사장들의 의견은 마치 “직진과 좌회전 동시허용 신호등에서 좌회전은 허용할 수 있되 직진은 허용하면 안 된다”는 판정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 검사장들의 의견이 얼마나 모순에 차고 웃긴지는 본인들만 모른다. 절차기억에 충실한 습관 때문이다.

일찍이 대통령이 검찰 권력을 사유화하면 폭정이 저질러진다. 우리는 독재정권 때 그런 불쾌한 일을 수없이 경험했다. 반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검찰총장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무기로 검찰 권력을 사유화하면 국가반란이 된다. 지금의 상황이 둘 중 어느 쪽에 해당되는지는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얼토당토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금 보이는 검찰의 행태는 순식간에 공무원이나 군대, 경찰 집단에게 파급될 수 있는 전염병이 될 수도 있다. 집단 이기주의의 절차기억을 강화시키는 도미노 현상이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행안부 장관의 지휘를 거부하는 경찰과 국방부 장관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 군대를 생각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한국사회는 지난날 국가반란의 아픔을 겪었다. 이승만 정권에서 총을 가진 경찰이 국민에게 반란을 일으켜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학생들에게 총질을 했다. 그 결과 4.19혁명이 일어났다. 전두환과 노태우 장군은 군사반란을 일으켰고 군대를 동원해 국민을 학살했다. 두 사람은 영원한 역적으로 기억되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역대 대통령들은 검찰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했다. 폭정의 연속은 젊은 대학생들의 죽음을 불러왔고 의인들은 기소되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우리는 폭정에 익숙한 국민이 되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검찰 스스로 총 대신 수사와 기소를 무기로 난을 일으켰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본다. 검찰의 난이라고 지적한다. 백주대낮에 검사들이 총장의 말 한마디에 떼 지어 모여들고 총장을 비호하는 의견을 내고 멋대로 법해석을 하면서 시위하는 듯 한 장면 앞에서 국민은 가슴을 쓸어내릴 수밖에 없다.

법무부 장관이 옳으냐 검찰총장이 그르냐는 시비는 오히려 시빗거리가 아니다. 그들의 집단행동 자체가 무정부 상태라는 심리적 공황상태가 진짜 문제다. 국민은 묻고 싶을 것이다. “검찰의 난을 바라보는 우리의 멍든 가슴을 풀어 줄 수사는 누가해야 해야 할까?”, “난을 일으킨 검찰은 누가 기소해야 하나?”. 국민은 말이 없어도 그렇게 묻고 있다.

잠시 후면 사람들은 우익이다 진보다 하면서 광장으로 쏟아져 나올 것이다. 지식인들은 시국선언을 하게 되고, 태극기 부대는 윤석열의 깃발을 나부끼며 코로나19의 벽을 뚫고 다시 광화문으로 집결할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회적 내란’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아픈 국민이 거리로 나서기 전에 이 문제를 풀어야 한다. 난을 진압하든 대통령 권력을 검찰총장에게 넘기든 결단해야 한다. 늘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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