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학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이탈리아 법의학자 체사라 롬브로스는 범죄자의 관상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큰 귀, 튀어나온 이마와 광대뼈, 긴 팔이 범죄형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죄수들의 특징을 관찰하여 얻은 통계치가 그 근거였다. 물론 과학적 근거가 아닌 일종의 통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A형 혈액형은 뭐가 어떻다는 식의 막연한 믿음으로 범죄형 얼굴에 대한 확신을 갖는 이들이 꽤 많다.
2013년 영화 ‘관상’이 화제였다.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 과정(계유정란)을 다룬 내용이었다. 뜻밖에 관상가를 끌어 들여 화제가 되었다. 몰락한 양반가문인 내경은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보는 천재 관상가였다. 산속에 칩거하던 그를 성공한 기생 연홍의 제안에 따라 한양으로 향한다. 연홍의 기방에서 사람들의 관상을 봐주던 그는 한양 바닥에서 용한 관상쟁이로 이름을 날렸다. 급기야 당대의 세도가였던 김종서에게까지 알려져 궁으로 들어간다. 인재를 등용하라는 명을 받았지만 핵심은 역모의 상을 가려내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정보를 이미 알고 있던 수양대군 측의 발 빠른 대처로 ‘수양은 역모의 상이 아니다’라고 오보한다. 뒤늦게 수양이 아닌 다른 관상을 보았음을 알아 차렸을 땐 이미 때늦은 상황이었다. 결국 자신의 눈이 뽑히고 아들마저 죽임을 당한다. 영화에서 수양대군은 “저자는 자기 아들이 저리 절명할 줄 알았을까?” 하며 비웃는 대사와 내경이 “난 사람의 관상만 보았지, 시대를 보진 못했소”하는 탄식이 기억에 남는다. 만약 그가 비극으로 끝나는 자신의 관상을 보았다면, 수양의 관상을 제대로 보았다면 역사는 달라졌을까 하는 잔상이 오래 남는 관상 관련 유의미한 영화다.
관상 관련 재미있는 사실 중엔 대기업 삼성 일화도 빼 놓을 수 없다. 오늘날 글로벌 기업이 되는 데 초석을 다진 삼성그룹 창업자 이병철 회장조차 사업 초창기 사주와 관상을 통해 인재를 뽑았다고 한다. 어쨌든 그 덕분(?)인지 오늘날 삼성은 초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물론 다른 회사들도 직원들을 뽑을 때 면접을 본다. 지금처럼 시스템이 갖춰지기 전에는 최종 선발과정에서는 인상을 비중 있게 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사람을 평가할 때 인상은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필자도 인상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여 아브라함 링컨 대통령의 ‘나이 40이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라’는 말이 가슴에 새겨져 있다. 삶의 철학이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얼굴은 자신의 마음에서 시작돼 행동을 통해 만들어진다. 개인적으로 질풍노도의 시기인 사춘기 때 방황하면서 생긴 구겨진 얼굴을 다시 펴는데 꽤나 오랫동안 거울을 보고 웃는 연습을 해야 했다. 지금은 다행히 인상 나쁘다는 말은 듣지 않는다.
물론 관상이 전부인 것은 아니다. 첫인상만 보고 선입견을 갖고 대하다 나중에 후회한 적도 없지 않다. 요즘 유행어로 ‘볼매(볼수록 매력있다는 의미)’인 사람도 분명 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인상이 과학이다’ 주장하는 것은 십중팔구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적 경험에 비춰 봐도 인상에 따른 판단이 90% 정도는 일치한 듯 싶다. 오차가 10%나 되니 과학이라고까지 할 수 없겠지만 ‘과학적’이라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관상이 과학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관상불여심상(觀相不如心相)이다. 청년 김구는 신분상 제약 때문에 과거를 보지 못하고 절망한다. 아버지의 권유로 관상을 공부지만 정작 자신의 관상이 거지 상임을 알고 또다시 절망한다. 하지만 마지막에 쓰여 있는 ‘얼굴보다 마음이 더 우선’이라는 것을 깨닫고 독립운동을 이끈 위대한 역사적 인물이 되었다.
마음을 잘 쓰면 얼굴로 나타나고 그것이 삶의 흔적으로 남는다.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지자. 그래야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