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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알아두면 쓸데없는 음악족보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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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8.04 14:4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교수·테너
서필 목원대교수·테너
부여 구드래 나루에서 유람선을 탄 적이 있었다. 낙화암을 지나며 백제 멸망에 궁녀 삼천 명이 몸을 던졌다는 해설이 흘러 나왔다.
저명 역사학자의 말씀이 떠올랐다. 낙화암 이야기는 당대에는 존재하지도 않았고 통일신라와 고려를 건너서 조선 초기 기록에서야 느닷없이 등장했다며 실화가 아닌 설화(說話)에 가깝다고.
“낙화암에 가보시라, 삼천 명은 커녕 서른 명 서 있을 데도 없다”

다양한 매체로 교차검증이 가능한 요즘이지만 여전히 잘못된 사실을 기반으로 한 말들이 넘쳐난다. 그리고 꾸준히 재생산되는 중이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경고란다.
'지구상에서 꿀벌이 없어지면 인류는 4년 안에 멸망할 것이다'
곤충학자도 아닌 아인슈타인이 참견할 만큼 꿀벌의 개체 수 감소가 아인슈타인 생전에 불거진 문제였던가. 사실은 20세기말 벨기에에서 일어난 프랑스 양봉업자 시위에서 근거 없이 아인슈타인을 들먹였던 게 그 시초였다는 씁쓸한 뒷맛만 남는다.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의, 한국에서만 유명한 명언으로 알려진 “일단 유명해져라, 그러면 네가 똥을 싸도 사람들은 박수칠 것이다”라는 말로 검색을 해보자. 전부 한국 블로그나 카페 혹은 url 만 가득할 것이다.

당사자가 죽고 난 후에 벌어진 일들이라 망자에게 확인해 볼 수도 없는 노릇이라면, 심지어 장본인이 살아있는 경우에도 그런 일은 있었다.

'천재는 99%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뤄진다'
불굴의 노력을 강조하기 위해 쓰이는 요즘의 의도와 달리, 정작 에디슨은 99%의 노력이 있더라도 1%의 천재적 영감이 없으면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재능에 대한 자부심 가득한 인터뷰였다. 에디슨은 생전에 인터뷰 기자한테 수차례 원래 의도를 거듭 설명하기까지 했지만 노력을 강조하는 대표 명언으로만 자리 잡았다.

음악의 아버지는? 음악의 어머니는?
예전 교과서에 버젓이 실리던 이야기였다. ‘음악의 아버지는 바흐이며 어머니는 헨델’.
이쯤 되면 두 부부사이 낳은 음악의 신동까지 나올법하다. ‘모차르트’

로마시절 한 지휘자에게 초등학교 시절 궁금증에 대해서 물어 볼 기회가 있었다, 왜 음악의 아버지가 바흐이고 어머니가 헨델이라는 말이 생겼냐고.
답변은 이랬다.
“누가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래? 왜 그렇게 불렀대?”
바흐보다도 120년 먼저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학교인 로마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도 도대체 그런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궁금해 하며 재밌어했다. 음악원 교수는 내게 당부했다.
‘누가 그랬는지 나도 무척이나 궁금하니 밝혀지면 꼭 알려줘’
서양음악의 본고장에서 족보가 흔들리고 있었다. 일단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로 이어지는 명명체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원문 출처가 아예 없는데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바흐가 당대에 거장취급을 받지도 않았다. 후대에 베토벤이 바흐의 합창곡과 건반곡들을 기리며 ‘화성학의 아버지’라며 칭송한 것이 그나마 비슷한 기록이고, 한 세기가 지나면 멘델스존이 바흐를 재 발굴하며 그때부터 엄청난 사후명성으로 재평가 받기는 했다.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면 현대 음계의 시조격인 피타고라스 음계를 정의한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증조부 정도 되는지도 모르겠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은 더 복잡하다. 간혹 헨델이 의발을 착용한 후덕한 초상화 탓에 오해도 있지만 당연히 남자다. 바흐와 헨델 둘 다 독일 태생에, 동갑내기였으며, 모두 같은 돌팔이 의사에게 시력을 잃어서인지, 하필 둘을 부부사이로 엮은 최초의 문헌이 궁금하기만 하다.
아무튼 풍채 좋은 게르만족 남자인 헨델을 음악의 어머니로 설명하기 위해, 바흐의 반대적 관점에서 헨델의 작품을 해설하기도 하다가 음악이나 음악사적 지위를 ‘어머니 같은 포용력’ 정도로 풀어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진정한 수사학(修辭學)의 승리다.

이걸 어린 시절 교과서 시험 문제로 달달 외웠던 기억에 허탈했다, 음악의 엄마 아빠 피아노의 시인, 악성. 이런 별칭들을 외우느니 작품이라도 한곡 듣는 게 훨씬 기억에 남았겠지만 정작 바흐작품은 음대입학하고 나서야 들을 수 있었다. 차라리 바이엘(Beyer)이나 체르니(Karl Czerny)가 더 유명한 음악가다. 피아노 학원에서 수십 번을 쳐보니까.
요즘 학교는 그렇지 않겠거니 중학생 큰딸에게 음악의 아버지를 물었더니 바로 ‘바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깜짝 놀라 학교에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그건 아니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난단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하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족보는 유지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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