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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세평] 대학과 기업의 청춘 죽이기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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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8.05 13: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우리나라에서 20대 청춘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은 어디일까? 말할 것도 없이 군대와 대학이다. 군대는 푸른 국방색 청춘 집합소이고, 대학은 미래의 꿈이 담긴 그린벨트다.

군부독재와 청춘의 아픔이 교차하던 80년대 혹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중에 대학을 배경으로 한 히트작이 많다. 고래사냥, 거리의 악사, 바람 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미미와 철수의 청춘 스케치, 강철대오, 구국의 철가방 등 대중의 애정이 담긴 영화 속에는 시대를 관통하는 대학의 풍경이 숨어있다.

지금은 어떤가. 대학이 대중문화의 주역으로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는커녕 TV 드라마에서조차 대학과 대학생은 아예 사라진지 오래다. 캠퍼스에 낭만이 없고 대학생에게 연애가 증발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스토리텔링이 안 되는 것이니 영화의 주제나 소재가 될 수 없다. 200만 청춘이 머무는 대학이 대중문화의 무덤이 되고 대학생은 사회의 투명인간이 된 까닭이 무엇인지 우리는 물어보아야 한다. 왜 그럴까? 무엇이 대학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는가? 먼저 물어볼 게 있다. 대학은 왜 망하지 않을까?

그것은 졸업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는 왜 버틸 수 있을까? 학생을 한 줄로 세울 수 있는 상대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대학은 세계에서 드물게 상대평가를 적용하고 중등학교의 단위제 교육과정처럼 과목 선택권을 상당히 제약한다.

상대평가는 취직시험의 성적자료로 활용된다. SKY는 물론이고 모든 대학에서 성적경쟁은 전쟁처럼 치열하다. 학생들은 성적경쟁과 취업준비에 여념이 없어서 연애할 수도 없고 마음껏 놀 수도 없다. 전공이나 교양시간이면 관련 서적 밑에 취직시험 교재를 깔고 몰래 공부한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동료학생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하면 교수에게 들키지 않고 영어공부를 할 수 있는지 비법까지 돌고 있다. 한마디로 취직시험 이외의 교양과목이나 전공과목 공부는 찬밥이 된 지 오래다. 졸업장과 상대평가가 없다면 대학은 당장 문 닫고 교수는 실직자가 될 지경이다.

기업이라고 해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대학이 기업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는데 게으르다고 비난한다. 하루가 아까운 기업은 학생들이 모든 것을 대학에서 익히고 곧바로 취업해 숙련된 사원으로 일하기를 바란다. 정부는 대학과 기업 사이에서 별다른 개혁의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

교육부에서 대학종합평가를 실시하면 딱 두 가지 ‘취업률과 상대평가의 준수’만 살피는 경향이 있다. 교육부는 대학의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평가할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수십 년 전에 교육부가 고정시킨 낡은 교육과정을 대학이 얼마나 잘 지키고 있는가를 따질 뿐이다.

대학은 점점 초등학교처럼 작아지고 규정에 얽매이고 아무도 공부하지 않는 교육과정을 준수하는 것으로 소일한다. 교수는 아무도 듣지 않을 듯 한 강의를 반복하고 학생은 상대평가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듣는 척한다. 서로의 진심을 감추고 속이는 수업이 SF영화의 장면처럼 오버랩된다. 슬픈 일이다.

대다수의 우리 국민들이 싫어하는 그 일본조차 우리 같지는 않다. 일본대학들은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를 실시하고 있다. 당연히 공부 부담이 적고 동료학생 간 서로를 무너뜨리고 타고 넘어야만 하는 성적경쟁을 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쟁 상대는 친구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절대평가의 힘이다.

그 힘은 기업의 협조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기업은 학벌이나 성적으로 학생을 뽑지 않는다. 심층면접을 통해 인성과 적응력을 평가해 선발한다. 기업은 1년 정도의 긴 시간을 신입사원 교육에 투자한다. 최근 실무능력을 테스트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적어도 성적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대학에서 가장 열심히 하는 것은 동아리 활동과 연애다. 살 맛 나는 청춘을 보장하기 위해 대학은 상대평가를 하지 않고 기업은 성적으로 줄 세우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의 대학들도 우리처럼 상대평가를 하지는 않는다. 절대평가를 한다. 교육부가 보조금을 미끼로 대학들을 평가하고 차등 지원도 하지 않는다. 대학과 기업이 협력하면 우리도 교육선진국처럼 대학공부와 취직준비를 분리할 수 있다.

그렇게 하려면 다음과 같은 노력이 선행돼야 한다. 첫째, 대학은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 둘째, 기업은 입사시험에 영어시험과 성적을 반영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교육부가 국가보조금을 미끼로 대학을 한 줄로 세우는 종합평가를 중단해야 한다. 넷째, 대학의 낡은 교육과정을 타파해 생활교육과 교양교육을 강화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전공과목은 폐기해야 한다. 다섯째, 대학의 문을 열어야 한다. 기업이나 사회단체 등 다양한 집단과 MOU를 체결하고 학과 신설과 실무능력이 뛰어난 전문가를 교수요원으로 영입해야 한다.

대학과 기업이 서로의 욕심을 내려놓게 하려면 청와대와 교육부가 나서야 한다. 학교를 개방하고 절대평가를 실시하는 대학에 더 많은 지원을 하고 성적으로 회사원을 뽑지 않고 신입사원 교육에 최대의 투자를 하는 기업을 칭찬해야 한다.

우리 대학의 청춘들이 가슴 뛰는 연애를 하게 해야 한다. 그들이 대학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세계 여행을 다니며 모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놀아야 연애를 하고 연애를 해야 결혼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지 않은가. 어차피 저 출산으로 소멸되는 대한민국이다. 젊은이들을 괴롭히고 절망하게 하는 대학과 기업, 정부의 망할 짓은 이제 멈추어야 한다. 캠퍼스가 다시 영화의 주제와 배경으로 등장하는 시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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