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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포럼] 우리사회,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존재하는가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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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9.10 10:3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고귀한 신분’을 뜻하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쳐진 프랑스어다. 1808년 프랑스 정치가 가스통 피에르 마르크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진 이 말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한다. 남보다 많이 누린다는 것은 사회적 신분이 그만큼 높기 때문에 가능하다. 따라서 국가나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에게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가 지워짐은 당연한 이치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시작은 초기 로마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왕과 귀족들이 보여 준 투철한 도덕의식과 솔선수범의 공공정신은 로마를 고대 세계의 맹주로 자리매김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봉사와 기부 등의 행위가 의무인 동시에 명예로 인식되면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고위층이 전쟁에 참여하는 전통은 더욱 확고했는데,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이러한 전통이 이어진 서양에서는 구체적인 사례도 많다. 대표적으로 회자되는 것이 칼레시(市) 얘기다. 프랑스와 영국이 백년전쟁을 벌일 때 끝까지 저항하던 칼레시민들이 항복하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저항에 대한 책임을 물어 칼레 시민 6명에게 교수형을 명한다. 이때 제일 먼저 자원한 사람이 칼레 시 최고 부자였던 외스타슈드였다. 이어 시장과 부자 상인, 그의 아들을 포함한 7명이 자원하자 외스타슈드는 자살로 결의를 다진다. 이에 감동한 영국 왕비는 왕에게 자비를 요청했고 결국 다른 이들의 처형은 취소됐다. 어릴 때 선생님에게 이 얘기를 듣고 감동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영국도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칼리지 출신들이 1.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2천여 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전쟁 때는 영국 여왕의 둘째아들 앤드루가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 미국도 6·25전쟁 때 장성의 아들 142명이나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다. 중국 지도자 마오쩌둥도 6·25전쟁에 참전한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듣고 시신 수습을 포기하도록 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물론 우리나라도 가진 자가 솔선수범한 사례가 적지 않다.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이들이 없게 하라’를 실천한 경주 최부자는 지금도 집 안내 현판에 ‘명부(名富)의 격조와 품격을 갖춘 경주 최부자’라고 소개돼 있다. 또한 9대가 정승 판서 참판을 지낸 명문가 자손인 우당 이회영선생 가문도 빼놓을 수 없다. 경술국치 후 우당 선생 가족은 만주로 가서 항일 투쟁의 기틀을 마련하고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세계 여느 사례와 비교해도 부족함 없는 우리 선조 이야기다.

문제는 지금이다. 요즘 사회 지도층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살아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많다. 고위공직자 인사청문회를 보면 별의별 사유가 다 나온다. 부동산 투기, 위장 전입, 병역비리, 탈세, 전과 등 지도층 인사로서 부적합한 반 오블레스 노블리주 행위다. 비록 낙마까진 하지 않았더라도 말끔하게 넘어가는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최근 코로나19 관련 사태도 부끄러운 현상이다. 일부 개신교 목사들을 중심으로 정부에서 자제를 당부하는데도 대면 예배를 고집한다든가 반정부 집회를 강행하는 경우가 그렇다. 그 피해가 고스란히 국민 전체가 짊어져야 할 몫으로 남겨졌는데도 반성하지 않는다. 의협사태도 그 연장선상이다. 방역 비상시국 임에도 파업을 강행하여 자신들의 주장만을 내세운다. 국민들 눈에는 ‘밥그릇 지키기’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목사나 의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직업이다. 그런 만큼 공적인 책임도 져야하는데 오히려 비난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다. 어디 목사나 의사 뿐 이겠는가. 정치인 기업인 판검사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도 대동소이하다. 후세들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많은 것을 받는 사람은 많은 책무가 요구된다." 미국 제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가 1961년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한 말이다.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잘 표현해준 명언이다. 팬데믹 시대,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반드시 새기고 실천해야할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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