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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욕심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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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0.12 14:3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하늘은 높고 말이 살찐다는 가을이다. 날씨가 선선해지니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가을에는 모든 것이 풍족해서 말도 살찌는 것이 아닌가 한다. 말만 살찌면 좋은데 나까지 살이 찌니 식탐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식탐만큼 넉넉한 몸매를 보고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할 것 같다. 점점 넉넉해져 가는 모습은 숨 막히게 하지만 좀처럼 식탐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귀촌하면서 도시에 사는 친구들이 자주 찾아왔다. 그들이 오면 자연히 바비큐를 하고 술도 한잔 곁들인다. 아파트에서 할 수 없던 생활이 좋아 오는 친구들을 반갑게 맞아 함께 즐기는 생활이 오래 지속되었다.

병원 가면 의사는 늘 감량하라고 했다. 많이 안 먹는다고 해도 믿질 않았다. 하긴 덜 먹으면 살이 빠져야 하는데 그대로이니 누가 믿겠는가. 음주를 줄이고 운동을 해야 하는데 운동은 숨쉬기운동만 하니 살이 빠질 리가 있겠는가.

음주가 잦아지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땅 넓은 것만 알아간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다. 문득 친구 남편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욕심이 많아서 먹고는 배출을 못 한다는 말이 나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어느 날 아침, 일어나는데 발목이 시큰거려서 걷기에 불편을 느꼈다. 불어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발목이 힘들다고 호소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병만 늘고 나중에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부담을 줄 것 같았다. 이를 악물고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처음에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결심한 이상 포기할 수 없었다. 눈을 떠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하루에 4만 보를 걸었다. 한 달 정도 했을 때 조금 줄어든 몸무게를 확인했다.

코로나로 밖에 나가지 못하니까 거실에서 제자리 걷기를 했다. 밖에 나가서 걷는 것보다 훨씬 힘들었다. 안 아픈 곳이 없고 다리도 퉁퉁 붓는다. 계획했던 것보다 음식물 섭취가 늘었다고 생각되면 목표치보다 더 걸었다. 어느 날은 아침부터 자기 전까지 6만 보까지 한 적도 있다.

그렇게 노력해도 안 되던 감량이 10㎏이 된 것이다. 한꺼번에 왕창 빠지지는 않지만 한 달에 2킬로그램씩은 빠진 것이다. 운동만 해서는 빠지지는 않는다. 먹는 것을 조절하고 운동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문밖출입도 못 했다. 몇 달 정도 못 본 지인이 깜짝 놀란다. 자기는 집안에만 있어서 몸이 불었는데 뭐를 먹었기에 그렇게 날씬해졌느냐고. 내가 다이어트 식품을 먹은 줄 안다.

우리 세대는 전후 세대라 자랄 때 먹을 것이 풍족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맛난 음식을 보면 자제를 못 했던 것 같다. 거기다가 애주가이다 보니 안주만 있으면 혼자도 마셨다. 특히 술은 저녁에 먹으니까 소화시킬 시간이 부족하다 보니 몸무게는 늘어 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어릴 때 같으면 부잣집 맏며느리 같다고 어른들이 좋아했을 몸매. 그러나 요즘은 살이 찌면 건강의 적신호로 간주한다. 사람은 급해야 뭔가 시도하는가 보다. 이상 신호가 없었다면 그냥 되는대로 먹고 마셨을 것이다.

이참에 내 마음의 욕심이 얼마인가 생각해 본다. 아직도 배움의 욕심이 남아 이것저것 하고 있다. 진전이 있건 없건 뭔가를 배워야 불안감이 해소된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하는 욕심이니 괜찮다며 스스로 채찍하고 즐기며 산다.

다행인 것은 다른 욕심은 없다. 사회적 자리에 관심이 없고 권력이란 것에도 거리가 멀다. 어딘가에 얽매이고 신경 쓰는 것도 싫고 감투보다는 바람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가볍게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즐기는 시간을 좋아한다.

거칠 것 없는 삶을 살면서 조금이지만 내 재능을 보시한다. 호스피스 활동을 하다가 내 몸이 부실해지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사는 것에 뭔가 불안했다. 주변에서 손을 내밀며 같이 봉사하지 않겠냐고 해서 동참하게 되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면 작은 손길이나마 보태고 사는 것에 즐겁고 감사하다.

집안의 살림도 하나씩 줄여가기로 했다. 언제부터인가 가득 찬 살림살이는 욕심의 산물로 여겨지고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쓸데없이 사들인 것들도 집 한쪽을 차지한다. 쓸 만한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주고 버릴 것은 버리면서 집안의 다이어트도 했다. 훤해진 집안이 마음을 가볍게 한다.

내가 건강해야 자식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을 수 있고 더 나아가서는 나라에도 적으나마 피해를 덜 주는 것일 게다. 마음의 욕심도 몸의 욕심도 날려버리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싶다. 그렇더라도 넉넉한 마음만은 욕심으로 채우고 싶다.

빼기는 쉽지만, 요요로 돌아오는 것은 순식간이다. 건강을 위해 한 다이어트로 예전에 입던 옷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운동과 절식으로 건강도 찾고 예쁜 옷도 입을 수 있으니 일석이조다.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 오늘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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