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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카피 캣(Copy Cat)과 지식 재산권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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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0.20 15: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카피캣은 새끼고양이가 어미의 사냥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는 뜻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화이트 채플 지역에서 벌어진 연쇄살인 사건 때 이를 모방한 모방 범죄를 지칭할 때 쓰였다. 이 단어가 다시 유명해진 건 21세기 초에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제품을 모방했다고 삼성을 비난할 때 다시 등장했을 때부터다. 이후에 카피캣은 특정 제품의 IP(Intellectual Property Rights). 즉 지식 재산권의 침해를 표현할 때 주로 쓰인다.

음악사에서 기록이 제대로 남은 최초의 카피캣 사건은 모차르트의 일화이다. 교황청 소속 작곡가 조르지오 알레그리가 1638년 작곡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Mei Deus)라는 합창곡이 있었는데, 당시 이 곡을 들은 교황은 너무 선율이 아름다워 이 곡을 지은 인간의 빛나는 재능이 신의 영광을 오히려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악보유출과 외부공연을 엄격히 금지시키고 오로지 바티칸 내부에서만 연주하도록 했다. 너무 아름다워 금지곡이 된 사연에 수많은 사람들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나 악보 입수가 어려워 어설프게 듣고 베껴 만들어진 조악한 판본만이 시중에 떠돌 뿐 원곡은 오로지 바티칸에서만 들을 수 있는 유일무이한 곡으로 한 세기 넘도록 명성을 이어갔다.

1770년, 모차르트가 아버지와 함께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을 방문해서 이 곡을 들었는데, 모차르트는 곧바로 집에 와서 오로지 기억에만 의존하여 완벽한 악보를 그려냈고, 곧 이 악보가 시중에 풀렸다. 바티칸엔 비상이 걸렸고, 유출자를 색출하기 시작한 바티칸이 모차르트에게까지 수사망이 좁혀왔을 때 당시 교황 클레멘트 14세는 모차르트를 직접 알현하고 직접 눈앞에서 그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천재 소년의 재능에 감명한 교황은 처벌은커녕 모차르트에게 훈장을 하사하고 알레그리의 명곡 Miserere Mei Deus 의 반출 금지 조항도 해제한다. 이 경우엔 훈훈한 카피캣의 예라고 하겠다.

한 세기 후, 베르디의 불후의 명작 오페라 ‘리골레토’ 초연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재현된다. 지금은 누구나 멜로디만 들어도 알 수 있고 모 가전제품 판매장의 CM송 멜로디로도 유명한 ‘여자의 마음은’이라는 오페라 3막의 테너 아리아는 초연 당시에는 엄격히 보안이 유지되었다. 작곡자 베르디는 이 단순하고도 반복적인 선율이 반드시 크게 히트하리라고 예상을 했다, 그러나 당시엔 유명 작곡가의 오페라 리허설에서 악보를 몰래 빼내서 다른 작품에서 도용하거나, 심한 경우에는 경쟁 작곡가들이 오페라 극장 연습실 근처에서 청음 능력이 출중한 제자들에게 멜로디를 엿듣게 한 좋은 선율을 먼저 도용해서 다른 오페라에 써먹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작곡자는 당시 테너 주역인 라파엘 미라테에게 3막의 아리아를 주지 않고 차일피일 미뤘고, 공연 연습 후반부까지 악보가 나오지 않자 테너는 불같이 화를 냈다. 그제야 그는 악보를 건네며 당부했다. ‘절대로 노래를 부르지 말고 오직 멜로디를 휘파람으로만 연습할 것!’ 그리곤 3막 전체에 복선으로 자리 잡는 테너 아리아의 테마가 담긴 악보를 건네며 온 극장 관계자들과 오케스트라단원, 그리고 스태프들에게서까지 비밀유지 서약서를 받았다. 지금의 할리우드 스포일링 방지 시스템의 효시였다. 예상대로 초연 후엔 주인공 리골레토의 아리아보다 바람둥이 악역인 만토바 공작의 ‘여자의 마음은’이라는 아리아가 더 유명해졌고, 순식간에 걸작반열에 올랐다.

모든 분야엔 지식재산권이 있다. 최근에 모 방송에서 자영업자가 오랜 기간 연구해 공개한 레시피를 무단 도용한 프랜차이즈 업체가 같은 품목으로 론칭했다가 큰 비난을 받고 시장에서 철수했다. 비슷한 시기에도 춘천의 한 빵집에서 강원도 감자를 이용한 레시피를 연구해 SNS로 홍보를 했는데, 얼마 후 유명 베이커리 프랜차이즈 업체가 그걸 기획 상품으로 내놓았다. 역시 세간의 비난에 이를 철회하는 일도 발생했다. 올 초, 모 지자체에선 호수공원 버스킹 참가팀을 선발하며 홍보와 장소를 내줄 테니 공짜로 재능기부 하라며 심사까지 걸었다. 자리 깔아 줄 테니 돈도, 심지어 기부금도 받지 말라는 식의 처사에 수많은 예술인이 분노하자 곧 오해가 있었다며 슬그머니 변경공고로 마무리됐다.

타인의 재능과 노력의 결과물을 대단치 않게 여겨 생긴 일들이다. 들인 노력과 거기에 필요한 재능도 지식 재산인데 그런 개념이 희박하니 자꾸 씁쓸한 일들이 일어난다. 내 것만큼 남의 것도 소중한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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