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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리가 온다] ④ 이윤아의 ‘춘향가’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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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0.26 14:1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혜진(목원대 교수)
최혜진(목원대 교수)
2020년은 여러 재난과 질병 속에서 우리 모두가 불안과 우울에 시달렸던 한 해인 듯 하다. 이러한 국민들의 마음에 크게 와닿았던 것이 바로 트로트였는데, 송가인으로 시작된 트로트열풍은 점점 기세를 더해가더니, 모든 방송사마다 트로트의 소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아예 트로트 채널이 생긴 걸 보면 그야말로 트로트의 시대가 된 것을 실감한다.

음악 현상도 그 시대를 반영한다. 한 때는 발라드가, 한 때는 아이돌 댄스 음악이, 또 한 때는 가요가 인기를 얻으며 상승과 하강 곡선을 그리기도 한다. 트로트는 일제강점기 무렵 일본가요의 영향을 받아 생겨난 장르이지만, 이미 한국적 전환 과정을 거쳐 어르신들은 물론 젊은이들까지 좋아하는 국민가요가 된지 오래다.

뜻도 모를 아이돌 댄스 가요들에 밀려 방송에서는 보기도 힘들었던 트로트가 갑자기 이렇게 주목을 받으며 열광적인 팬들을 양산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트로트 장르의 특유의 감수성때문인 듯한데, 가사 내용이 주는 인생의 진한 감동, 공감이 절로 되는 삶의 여러 국면, 누구가 한 번쯤 느꼈을 어느 순간 등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어려운 시대일수록 삶의 위안이 되는 가사가 더욱 마음을 울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음악으로부터 삶의 위로와 희망을 얻는다면 그것은 너무도 댜행한 일이다. 더욱이 이러한 음악을 예전의 나이든 가수가 아닌, 젊고 혈기 왕성한 차세대 가수들이 나와서 힘찬 미래를 보여주니 더더욱 박수받을 일이다. 트로트의 노쇠한 이미지를 단숨에 깨트렸다는 점이 바로 열풍의 근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판소리를 생각해본다. 조선후기 변화하는 시대를 담아내 낡은 가치관을 깨고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었던 판소리. 당대 판소리를 듣던 사람들은 울고 웃으며 변화될 미래를 품고 위로를 얻었을 것이다. 기생 춘향이가 양반 이도령과 거리낌 없이 평등한 사랑을 하는 꿈, 가난한 집 딸이 황후가 되어 세상의 맹인들을 보살피는 꿈, 힘없는 토끼가 무능한 왕 앞에서 큰소리치며 내 목숨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고 외치는 꿈, 착한 흥보가 부자가 되는 꿈, 이름없이 사라져간 군사들이 장군 앞에서 대들며 할 말을 하는 꿈 말이다.

우리 판소리는 시대의 대변자이자 인간적인 삶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노래했던 소중한 우리 전통공연예술이다. 인간사 희노애락을 담아내 이야기를 따라가며 공감하고 감탄하면서 절로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내는 위대한 예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판소리의 언어도 옛것으로 물러나고, 그 이야기도 현대에 살아숨쉬는 것이 되지 못하여 인간문화재의 소리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이런 와중에 2020년 판소리가 젊은 소리꾼들을 소환하고 주목하는 것은 우리 시대 판소리가 제 역할을 잘 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대전시립연정국악원의 기획공연인 젊은 소리꾼 초청 판소리다섯마당 시리즈 네 번째 공연이 특별히 기대되는 것은 그러한 이유다. 29일 공연을 앞두고 있는 소리꾼 이윤아는 대전시립연정국악원 국악연주단 단원으로 이미 15세부터 박동진제 판소리를 배웠다.

박동진판소리전수관의 김양숙 관장은 박동진제 적벽가 전수조교로 유일하게 박동진제 전 바탕을 배운 제자이다. 제자를 가르치는 열정이 남다르고 그 깊이가 있어 충청도 소리를 전파하는데 너무도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는 분이다. 그런 김관장의 수제자이며, 박동진제 춘향가, 적벽가를 배운 이윤아는 2015년 이른 나이에 대전시립연정국악원에 입단할 만큼 실력과 재능이 뛰어난 소리꾼이다.

박동진제 춘향가는 동초제 춘향가와 함께 8시간 분량의 긴 사설을 가지고 있으며, 동서편을 아우르는 박동진 특유의 어법이 잘 살아있는 춘향가 유파라 할 수 있다. 판을 짜는 기량이나 입담이 뛰어났던 박동진 명창은 부를 때마다 소리가 달라 제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데, 이 어려운 박동진제 춘향가를 엄하게 학습받았으니 그 실력이 남다르다.

더욱이 이윤아는 이미 방송을 통해 국악대중화에 힘쓰고 있어 이 시대와 소통하는 소리꾼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를 전공하는 젊은 소리꾼들이 가창 실력을 바탕으로 트로트, 뮤지컬, 재즈, 가요, 드라마, 영화 등을 종횡무진하고 있어서 우리 국악의 저변을 넓히는 데 공헌하고 있는 요즈음 이윤아의 활동도 만만치 않다.

스승을 따라 외길 판소리 인생을 걷는 것은 우리 판소리의 전통성을 지키는 일이기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판소리도 민속예술이며 대중예술이라는 점을 잊지 않아야 한다. 판소리는 시대에 따라 대중의 요구를 잘 받아들여 새롭게 태어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옛것을 소중히 배우되 현대의 예술로 끊임없이 재창조하려는 열정 또한 소중한 것이다. 이윤아의 노력은 바로 이런 점을 보여주어서 의미가 있고, 또 기대가 된다.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지키면서 대전의 판소리 판이 되살아나길 바란다. 관객의 추임새 없는 판소리가 얼마나 고통이었는지를 지난번 이진우 소리꾼의 판소리 공연에서 체험했기 때문이다. 10월 29일 공연은 현장의 판이 살아나고, 판소리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즐기는 ‘공명’이 크게 울리도록 해보자. 대전의 귀명창들이 모두 이 날을 고대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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