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지인들 모임에서 나름 진보적인 성향을 가진 이가 던진 한마디가 그날 모임의 토론주제가 된 듯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먹고 살기도 힘든데 검찰 개혁이 뭐라고 나라를 이토록 시끄럽게 만드나”였다. 덧붙여 검찰 개혁은 해야 하지만 단계적으로 하지 않고 한꺼번에 다 바꾸려니 그만큼 저항이 뒤따른다는 논리였다. 심지어 궁지에 몰리면 쥐도 고양이에게 덤벼든다는 얘기로 설득력을 더 했다. 필연적으로 다양한 논리들이 더해져 논란이 이어졌다. 모임에서 정치얘기는 그만 하자며 결론 없이 정리되긴 했지만 이런 풍경이 다른 모임서도 흔히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검찰개혁의 화두는 언제 어떻게 던져진 것일까. ‘검찰 개혁’의 단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과제 최우선순위에서 찾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검찰이 ‘정치 보복’의 칼로 쓰이는 악순환을 끊어 내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제도적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 대통령의 검찰 개혁 구상의 요체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법제화다. 그 핵심은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도입이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검찰개혁의 적임자로 윤석열 검찰총장과 조국 법무부 장관을 낙점했다. 그러나 환상적인 개혁콤비가 될 것이란 기대는 검찰이 법무장관을 거부하면서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정부로서는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힌 모양새다.
문 대통령이 검찰 개혁을 시대적 소명으로 삼은 데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였음은 이견이 없다. 문 대통령은 저서를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은 개혁을 둘러싼 참여정부와 검찰의 대립 결과”라고 진단했다. 검찰에 자율성만 보장하면 검찰이 스스로 개혁하리라던 참여정부 당시의 낙관적인 전망을 반성했다. 저서 ‘운명’에서는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를 사법 개혁과 함께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고 소회할 정도였다.
사실 검찰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시기가 노무현 전 대통령 참여정부였다. 노무현 정부의 검찰 개혁 방안은 법무부의 견제와 인사권을 통해 검찰을 통제하되, 수사에서는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고자 하였다. 당시 정부는 ‘정치 검사’들에 대한 일종의 좌천성 인사를 추진했으며 강금실 법무장관을 임명하여 문민 통제를 시도했다. 대신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청와대가 간섭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웠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2003년 12월 대검 중수부는 여야 전반의 대선자금을 대대적으로 수사했다. 그 결과 한나라당은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썼고, 노 대통령의 측근들도 실형을 선고받았다. 대선자금 수사는 결과적으로 검찰 개혁은 동력을 약화시켰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 개혁을 비교적 낙관적으로 생각했음은 여러 증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검찰과의 대화’를 통해 평검사들과 검찰 개혁의 방향을 토론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그들도 결국은 특권층의 조직원일 따름이었다. 토론 내내 그들은 ‘검찰 독립을 위해서 인사권에 간섭하지 말 것’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급기야 “이쯤 되면 막 가자는 거지요”라는 유명한 말이 그래서 나왔다. 노 전 대통령의 선의는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검찰의 정치적 독립을 보장하면 검찰도 부정한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겠느냐는 기대는 충족되지 않았다”고 자인했다.
이러한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보고 겪은 문 대통령에게는 개혁의 대상이자 기득권인 검찰이 스스로 개혁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비검찰 출신 법무부장관 임명으로 초석을 놓고 패스트트랙을 통해 관련법을 처리했다. 이제 공수처장 선임을 앞두고 있다. 검찰개혁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이뤄져가는 과정이다. 역사적 흐름은 그들만의 특권을 더 이상 두고 보지 않겠다는 것이다.
개혁의 길은 멀고 험하다. 검찰 개혁은 그 시작에 불과해야 한다. 그들만의 리그에서 특권을 누리며 이익집단화한 권력기관들, 이제는 그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섬기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