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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가면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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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2.06 16:28
  • 기자명 By. 충청신문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우스꽝스럽게 웃는 얼굴로 사회에 대한 거침없는 풍자를 표현하는 중국 현대미술의 거장 ‘유에민쥔’의 개인전시가 우리나라에서 열린다는 내용을 TV를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한 번쯤은 가까이에서 정말 보고 싶었던 그림들이었다.

COVID-19라는 세기의 흑사병으로 재난의 긴 터널을 힘겹게 버티고 있는 지금 우리들에게 작가가 그린 ‘웃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편으로는 희망의 메시지도 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면에 감추어진 슬픔을 비웃는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유에민쥔은 웃는 얼굴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한다. ‘웃는 얼굴은 아주 복잡한 표정이며 웃음 속에는 기쁨, 슬픔, 그리고 교활, 고통도 있으나 또한 아주 깊은 뜻도 있다’고 하였다.

유에민쥔의 대부분의 그림에는 똑같이 생긴 남자들이 반복해서 웃고 있던지, 또는 눈을 감고 있던지, 아니면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정도의 하얀 치아를 빽빽이 훤히 다 드러내면서 웃고 있는 표정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작가의 메시지도 보여진다. 마치 그림 속 그 인물이 유에민쥔로 둔갑하여 바로 내 앞에 앉아서 웃고 있는 것처럼 보는 나의 가슴을 울컥하게 한다.

가면의 본질은 무엇일까? 아마도 표정을 숨기는 것이 아닐까! 좀 더 진실되이 표현하자면 인간의 모순된 다양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피난처일 것이다. 영국의 작곡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로 만든 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을 세 번이나 관람한 기억이 있다. 파리 오페라극장을 무대로 천사의 목소리를 타고났지만, 사고로 인하여 흉측하게 변한 기형적인 얼굴을 가면으로 가린 괴신사 ‘유령’ 즉 에릭이 아름다운 프리마돈나 ‘크리스틴’을 짝사랑하면서 펼쳐지는 비극적 이야기이다. ‘밤의 노래(The Music of the Night)’와 ‘바램은 그것뿐(All I Ask of You)’이라는 애잔한 오페라와 ‘흰 마스크’는 팬덤의 트랜드이었지만 많은 생각에 빠져들게 하는 침묵의 메세지이기도 하였다.

가면에 대한 이야기를 위키 백과에서 검색하였더니, 신의 가면을 쓰면 그는 이미 인간 이상의 존재인 신이 되고, 망자(亡者)의 가면을 쓰면 그는 죽음의 세계와의 매개자로서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이다. 인간이면서도 신이요,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자라는 이 모순, 이것은 초인간적인 신뢰성이며, 가면이 갖는 주술성이라고 한다. 또한, 주술적이던 가면이 후세에 연극용으로 전용된 뒤에도 이와 같은 이중성, 모순의 동시적 존재성은 지속되어 가면극이 갖는 매력과 강력한 인상 등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한다.

보편적으로 우리들에게 가면의 의미는 슬프기도 하고 솔직하지 못한 인간성을 표현하는 차단된 세상의 어두운 창문인 거 같다. 평소에 왕래가 없었던 모 교수가 점심을 같이하자고 연락이 왔다. 순간 당황도 되고 적당히 거절하고 싶었는데 그 후 수다가 염려스러워 승낙하였다. 식사 내내 어색하고 공감하기 힘든 주제에 밥은 먹었는데 에너지가 되려 빠져나간 것 같아 연구실에 도착한 후 얼큰한 컵라면으로 재차 주린 마음을 채웠다. 나의 단점이다. 싫어도 좋은 척, 못나 보여도 이쁘다 하면 좋을 텐데, 아직도 이런 부분이 마냥 서툴고 표정 관리가 안 되니, 나 역시 가면 속에 갇혀서 사는 어설프고 나약한 인간인 듯하다.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는 매해 사순절 중 재의 수요일 전 10일 동안 ‘Carnevale’이 열리는데, 브라질 리우 카니발, 프랑스 니스 카니발과 함께 세계 3대 축제로 ‘베네치아 사육제’라고도 한다. 이 축제의 특징은 화려한 가면과 의상인데 참가자들은 최대한의 독특한 가면과 옷을 차려입고 베네치아 곳곳을 누비며 관광객과 하나 되어 광장을 가득 메운다.

20대부터 소소한 나의 결심이 있었는데 훗날 환갑 기념으로 손주 손 잡고 이 축제에 참여하는 것이었다. 긴 챙 모자에다 화려한 가면, 하얀 장갑에다 붉고 푸른 긴 드레스에 까만 우산을 들고 또 다른 내가 되어 사람들 틈에 함께 섞여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꿈으로만 간직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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