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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실속 체험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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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2.07 18:14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코로나가 내 생활에 많은 변화를 준다. 남편 회사는 한시적 폐업이다. 유람선에 손님이 없으니 무작정 밀고 나가기엔 출혈이 너무 크다며 내린 처방이다. 우리만 어려운 것이 아니고 중소기업을 비롯해서 소상공인들도 지옥 같은 삶일 것이다.

이제나저제나 코로나가 물러가길 바라지만 기약도 없고 대책도 없느니 답답한 사람이 어디 우리뿐이랴. 전 세계가 비상사태인데 치료제는 아직 나타나지 않으니 매일 매일이 불안감으로 돌다리를 걷는 심정이다.

시골은 마당에라도 나가고 한적한 시간을 택해 산책이라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아파트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나들이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특히 아이들이 있는 집은 더할 것이다. 학교도 못가니 부모들도 아이들 못지않게 힘들 것이다.

오후에 남편과 운동복을 입고 한적한 시골길을 걷는다. 봄부터 시작했는데 재미난 일이 생겼다. 산책길에 나물이 있어서 꺾어 와서 친구도 주고 우리도 먹다 보니 부식비가 들지 않았다. 여름 내내 나물을 뜯은 것 같다. 처음에는 주머니에 넣어 오다가 나중에는 가방을 가지고 다니며 제법 많이 뜯어 왔다. 내가 먹기보다는 누군가와 나눌 수 있음에 기쁨으로 부지런을 떨었다.

가을에는 밤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지나는 길에 쏟아져 있어도 아무도 주워가지 않는다. 아마도 밤톨이 작아서 그런가. 우리는 가방 가득 주워왔다. 남편이 밤 까는 기계를 사 와서 쉽게 껍질을 벗겨 밥할 때마다 넣어 영양밥을 짓는다.

밤이 자취를 감추려 하자 도토리가 나타난다. 지나칠 때마다 길에 떨어진 도토리를 주워왔는데 티끌 모아 태산이라더니 제법 많이 주웠다. 길에 떨어진 도토리는 차가 지나면서 으깨진 것도 있지만 반들거리는 도토리가 보이면 우리는 허리를 숙인다.

고구마를 수확하고 간 뒤에는 많은 사람들이 호미를 가지고 빈 밭을 뒤집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냥 보고 지나갔는데 호기심이 일었다. 호미를 가지고 이리저리 뒤지니 멀쩡한 고구마도 나온다. 기계로 수확을 하니까 흙 속에 묻힌 고구마를 그냥 두고 가는 것이다. 기계로 하다 보니 잘린 고구마가 많다. 비록 잘린 고구마지만 많이 주워서 반건조 고구마를 만들었다.

손질해서 찐 다음 반쯤 말린 고구마는 모두 지인에게 주었다. 내가 먹기 위해 했다면 안 했을 것이다. 도시에는 반쯤 말린 반건조 고구마 먹기가 쉽지 않을 테니 수고스럽지만 그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생각하며 실속 가득한 체험을 하는 중이다.

우리 어릴 적엔 학교에서 벼 이삭을 주워오라고 했다. 나는 그런 데는 정말 재주가 없었다. 농사를 짓지 않는 우리 집엔 벼가 없어서 결국 집안 숙모가 한 됫박 주어서 학교에다 내곤 했다. 풀씨도 가지고 오라 했는데 결국 가져가지 못했다.

그런 내가 지금 이삭줍기를 하고 있다. 혼자 하면 안 했을 텐데 남편과 함께하니 재미도 있다. 나는 집에 있는 것만 나누어 주자고 한다. 남편은 버려진 것이 아깝다면서 열심히 주워 와서 나누어 주려 한다. 힘든데 하지 말라고 해도 버리면 쓰레기요 가지고 오면 자원이라며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남편의 너그러운 마음에 감동해서 투덜대면서도 함께한다. 그의 법호를 내 맘대로 보현행이라고 했는데 정말 보현행을 실천하는 사람이다. 힘들다고 그만하자고 하면서 주변을 챙기는 그와 함께 열심히 이삭줍기한다. 보현행을 행하는 그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는 나는 무늬만 불자라 생각하며 이삭줍기에 동참한다.

시골엔 갖가지 이삭줍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고구마. 인삼, 마, 도라지 등. 인삼과 도라지는 깊게 파는 수고를 해야 해서 포기했다. 고구마는 성한 것보다는 잘린 것이 태반이지만 줍기가 쉽다.

밀레의 이삭줍기하는 그림을 볼 때는 정말 디테일하게 잘 그렸다 정도만 생각했었다. 내가 직접 해 보니 쉬운 게 아니었다. 지금이야 먹거리가 풍부하지만, 밀레가 그림을 그릴 때는 삶이 얼마나 팍팍했을까 생각하니 그림 속의 사람들의 힘듦이 보였다.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는 이삭줍기에 재미를 붙였다. 빈 밭을 보면 가서 훑어보려고 한다. 베트남에서 온 근로자가 좋아한다고 해서 고구마는 주워 찐 다음 말려서 보낸다. 자기네 나라에서 재배해서 먹었는데 여기선 사 먹어야 하니 잘 못 먹는다는 말을 들은 남편은 힘들다는 내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오늘도 열심히 이삭을 줍는다.

내가 한 작은 정성이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는 행동이기에 숙이는 허리가 아파도 즐겁다. 단풍 고운 나무를 바라보며 가을과 함께 한껏 사랑을 줍는다. 널리 퍼지는 사랑의 향기를 가슴 가득 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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