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은 자신은 물론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인데 굳이 과태료 제도까지 해야 되는가 반문해 본다. 대다수 잘 지키고 있지만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한 불미스런 소식을 보면서 과태료 제도도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답답함을 좀 참고, 불편함을 좀 참으면서 covid19의 치료제와 백신이 개발되기를 기다리는 인내가 요구된다. 마스크의 불편함을 참는 것은 이웃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다.
인내(忍耐),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왔고, 배워왔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해서는 딴짓하지 않고 선생님을 바르게 보는 수업자세와 질서와 규칙을 지킴도 참음에서 비롯됨을 배웠다. 군대에 가서는 모기가 물어도 가려움을 참으며 차렷 자세를 30분이 넘게 하기도 했다. 기차를 탈 때도 연착이 되면 묵묵히 참고 기다렸다. 결국 우리 생활 자체가 내 멋대로가 아닌, 참음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런 참음의 모습들이 어느 사이 사라져 가고 각자의 자기 멋대로(그것도 개성이라는 미명아래)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예로부터 인내는 뜻을 이루기 위한 필요사항이었다. 중학생 시절 안중근 의사의 유묵 “忍耐”를 보면서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라는 격언을 책상 앞에 붙여 놓고 졸린 눈을 비벼대면서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오래 실천하지는 못했지만, 인내라는 말을 요즘도 조카들이나 자식들에게 훈계용으로 잘 써먹고 있다.
참음은 여러 종교에서도 강조하는 말이다. 성경 갈라디아서 5:22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하여 참된 성도가 갖추어야 할 아홉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싯다르타는 “지혜로운 것은 훌륭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은 인내”라고 했다. 불가에서도 수행하는 기본은 인내이다. 수행의 기본은 정좌를 하고 유혹을 떨치며 명상에 잠기는 참음의 수련과정이다.
친지의 아들이 인도에서 근무하다 귀국했다. 며칠 전 길에서 만나 그간의 근황을 들었다. 귀국해서 ‘자가격리’로 2주간을 보냈단다. 처음 며칠간은 답답하고 힘들었지만, 마음을 다스리며 그간 하지 못했던 독서도 하고, 지내온 삶을 되돌아 보는 시간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얻은 것은 “인내심”이었다고 한다.
친지의 아들 이야기를 생각해 보면서 지하철에서, 시내버스에서 그 적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마스크를 벗거나 착용하지 않고 난동을 부리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지난 11월 D시의 고위직 공무원이 마스크 착용관계로 카페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직위해제 되었단다. 조금 참을 만한 인내심도 없었을까? 긴 세월 살아오면서 몸과 마음에 쌓인 삶의 지혜가 없었을까? 뉴스에서는 마스크 미착용으로 대중교통 운전자나 관계자들과의 다툼 등으로 기소된 수가 몇 백건이라고 한다. 마스크 하나 제대로 쓰지 않는 사람들이 과연 맡은 일을 제대로 할 수나 있는지?
올해도 막바지에 들어섰다. covid19로 뉴스가 도배되고, 모든 삶의 과정이 블랙홀인양 그 속에 빠져들어 간 기분이다. 그러나 어둠 후에 새벽하늘이 밝아 오듯,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리면서 인내를 시험해 보아야겠다. 다행이 백신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어 내년에는 예방 접종이 가능하다고 한다. 어릴 적 책상 앞에 써 붙였던 “인내는 쓰고 그 열매는 달다”라는 말의 참 뜻을 다시 돼새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