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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12월. 시간의 문 앞에서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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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12.22 16:4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벽에 걸린 달력이 흔들리고 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환기를 위해 열어놓은 창문 너머 바람 탓이다. 사시사철 온갖 희로애락을 담아 무거울 법도 하련만 달력은 들어오는 바람에 제 몸 하나를 지켜내지 못하고 있다. 떨어질 듯 아슬아슬 펄럭이는 소리가 구원의 아우성으로 들린다. 서둘러 창문을 닫고 달력을 바로잡는데 12월이란 머리말 숫자가 눈에 성큼 들어온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가 어느새 그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우편함에는 이곳저곳에서 보내오는 새해 달력이 들어있고, 근무하는 유치원 현관에는 지난주부터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다. 아이들에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기 위해 올 날이 며칠 남았는지 손을 꼽아 날을 세고 엊그제에는 동지(冬至)를 맞이해 팥죽을 쑤고 새알도 빚었다. 동짓날 팥죽을 먹으면 새해 운수가 대통하고 소원을 이루게 되며, 건강하게 평안한 한 해를 보낼 수 있다는 옛 어른들 말씀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노루 꼬리보다도 짧다는 겨울 해가 오늘도 일찌감치 어둠을 불러들인 시간, 탁상 달력을 펼쳐놓고 한 장 한 장 넘겨 가며 지난날을 돌아본다. 지난겨울부터 시작된 코로나가 쉬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그래도 봄은 왔다. 푸릇푸릇 교정에는 새싹이 돋고 학교는 문을 열어 입학식을 해야 했지만 모든 학사일정은 무기한 연기되었다. 서울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은 모든 강의가 온라인으로 변경되었다며 짐을 싸 집으로 내려왔고, 비닐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쓴 채 21대 국회의원 선거에 한 표를 넣었다. 그야말로 계절은 봄이었으나 마음은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추운 날들의 연속이었다.

여름이 오면 코로나는 저 멀리 물러가고 다시 예전의 평범한 일상이 돌아오리라 한껏 기대에 부풀었다. 더없이 빛나는 봄을 그리 허망하게 보냈으니 여름만이라도 뜨겁게 채우리라 이것저것 계획도 알차게 세웠다. 그러나 좀체 걷히지 않는 바이러스의 벽 앞에서 나는 점점 지쳐갔다. 설상가상 그 어느 해 보다도 길었던 장마와 몇 차례 태풍이 몰고 온 물 폭탄은 누구에게든 고단한 여름이었을 것이다. 미처 피하지 못한 가축들이 지붕 위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사진 한 장의 기억은 올여름을 뒤돌아보는 첫 번째의 흔적이 될지도 모르겠다.

한시도 떼 놓을 수 없는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 두기가 일상이 되어버린 생활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어느덧 가을에 가 닿았다. 많은 이들이 그림 같은 고운 단풍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계절이 시작되었건만 집 밖을 나서기가 더없이 조심스러웠다. 도무지 끝나지 않고 끝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그림자는 그렇게 일상을 바꿔놓고, 나의 생활 반경을 축소 시켰다. 해마다 추석이면 고향으로 달려가 차례를 지내고 집안 어른들을 찾아뵙는 넉넉한 명절을 보냈건만 이번 추석엔 집에서 조용히 가족들과 전화로 서운함을 달랬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이 가기까지 내가 지나다닌 길이라곤 직장과 집, 집과 직장으로 천상 쳇바퀴 속 다람쥐가 되어야 했다.

계절은 이제 산도 들도 쉬어가는 겨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한 해의 막바지에도 가속도가 붙었다. 지난 달력에 적혀있던 가족들 생일이며 집안 대소사를 새 달력에 옮겨 적으며 가는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이할 준비를 조금씩 한다. 여전히 코로나는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많은 제약을 가하고 있지만 무슨 일이건 주어진 상황에 맞춰 즐겨보리라 다짐도 한다.

추운 겨울의 칼바람도 결국엔 지나간다. 각자 처한 환경에서 저마다 서로의 마음을 보태 하루하루를 채우다 보면 삶은 고난 속에서 더 견고해지리라. 어떤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을 잘 이겨내어 인생의 디딤돌로 만들라고 하던 어느 교수의 한마디에 오늘도 힘을 얻는다. 새삼 소중함의 가치 기준이 남달랐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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