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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반짝’ 일하는 실버를 만나다

고령인구 늘어 취업 노인도 증가 추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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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1.08.04 19:01
  • 기자명 By. 뉴스관리자 기자

경비·청소 등 단순 노무직에 몰려… 노인 수요 반영한 장기취업정책 필요

숨이 턱턱 막혔다.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희수(喜壽)가 내일모레인 일흔여섯 노인의 날랜 발걸음을 뒤쫓기 바빴다.

짐 실은 수레를 끌며 노인은 한 번씩 멈춰 섰다.

“내가 좀 걸음이 빠르지, 기자양반?”

‘좀 빠르신 게 아닙니다, 어르신’하고 말하려는 찰라, 또 손수레를 잡아채신다.

한낮처럼 도로가 달궈지는 지난 3일 오전 10시 대전 둔산동 둥지아파트에서 택배원으로 일하는 백발의 청년 임석주(76)를 만났다.

아파트택배사업은 노인일자리사업의 하나로 대전시니어클럽이 지자체 및 전문택배사와 연계, 아파트 거점에 전달된 물품을 아파트 내 고객에 전달하는 사업이다.

“처음에는 내가 사는 아파트에서 창피해서 어떻게 택배를 하겠냐는 생각에 안 하려고 했다”고 말하는 임 씨는 지난 2008년 일을 시작해 4년차에 접어든 베테랑 택배원이다. 2년 전에는 택배왕으로 뽑혔을 만큼 일처리가 빠르고 꼼꼼하다.

노옹(老翁)은 “건강은 타고난 것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크게 아픈 데가 없다. 노안은 어쩔 수 없는 것이고, 가끔 감기만 지나간다”면서 “열심히 일해서 그런지 집에 들어가면 꿀맛 같은 저녁식사를 하고, 단잠을 잔다”고 힘차게 말했다.

임 노인은 20여년을 우리지역 중견건설사에서 일하다 65세에 퇴직했다. 첫 직장은 현재 모 재벌기업의 전신이었다. 당시로는 늦은 나이 서른에 부인을 만나 남매를 뒀다.

자녀들은 모두 분가해 살고 있다. 일흔이 된 부인도 대전시니어클럽을 통해 유치원 돌보미 강사로 활동하며 아이들을 보살피고 있다.

각설하고 물었다. 굳이 이렇게 고생할 필요는 없지 않으시냐고.

그러자 “솔직히 돈은 얼마 안 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라며 노인은 다음 배송 목적지를 향해 뛰는듯 걸었다. 숨을 헐떡이며 ‘그게’ 무엇이냐 묻자 “아침에 눈 떴을 때 내가 갈 데가 있다는 것”이란다. 30여년을 회사원으로 살아온 그에게 ‘밥 먹고 나가는 일’은 단순하지만 명백한 의무와 같았으리라.

이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요즘 젊은 사람들 일자리가 없어서 난리라는데 가끔은 나처럼 일하는 노인들이 아이들 자리를 뺏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

지난 5월 통계청 조사결과에 따르면 고령층(55~79) 경제활동인구는 516만8000명으로 전년보다 28만여명이 늘었다. 청년층(15~29세) 경제활동인구가 424만명으로 6만여명 준 것과 대비된다.

착시효과를 줄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고령층이 일을 그만둘 당시 평균 나이는 만 53세였다. 일반적 생애주기(라이프사이클)상 자녀 대학등록금이나 가족생활비 등으로 한창 목돈이 필요한 시기다. 거칠게 보면 취업난에 허덕이는 자녀 대신 나이 든 부모가 다시 경제활동에 나선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노인취업자 46%가 기능.기계조작.단순노무, 21%가 농림어업 종사자인 것도 톺아볼 부분이다. 이른바 3D업종이다.

휴가철이라 배달물량이 많지 않다며 일은 한 시간여 만에 끝났다. 그제야 찬물 한 잔을 벌컥벌컥 들이킨다.

“굳이 힘든 게 있다면 택배로 (속이고) 도둑·강도질하는 놈들 때문에 사람들이 문을 잘 안 열어주는 것”이라면서 “그래도 나는 여기 사는 사람이고, 오래 해서 그나마 괜찮은 편”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주민 조창규(42)씨는 “아이들이나 아내가 혼자 있을 때 택배가 온다면 불안한 건 사실이다. 그나마 어르신은 얼굴이 많이 익어서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노년층인구 약 60%는 ‘생활비에 보탬이 된다’거나 ‘일하는 게 즐겁다’는 이유로 취업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노인 기준을 65세 이상으로 볼 때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 노인들은 민간취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있다. 일반 기업에서는 이왕이면 60대 초반의 젊은(?) 노인을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 취업직종이 대부분 경비나 현장관리·청소·단순생산 등에 집중돼 있어 계속고용이 어렵고, 임금이나 복지수준도 초라한 경우가 많다. 고령층 취업실적을 뽐내기 위한 관 주도의 1회성 행사가 아닌 노인 특성에 맞고, 경력과 연계시킬 수 있는 양질의 일자리 개발에 민.관이 더욱 힘써야 하는 이유다.

손등에 검붉은 빛이 돌아 자세히 보니 어디에 긁히셨는지 피가 굳어 있다. “이 정도야 뭐” 정작 본인은 신경도 안 쓰는 눈치다. “바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좋고 신바람 나는지 모른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노선생의 탁한 목소리에서 한여름 싯푸른 바람내가 묻어나는 듯했다.

/문승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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