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세평] 늙음과 죽음의 서(序)
[목요세평] 늙음과 죽음의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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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1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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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김대유 전 대통령자문 교육혁신위원회 위원
세종시의 은하수공원은 굴지의 장례식장이다. 생로병사를 거친 영혼들은 은하수 공원에서 안식을 맞이하고 하늘의 별이 된다. 언제든 길을 잃은 중년과 어스름 황혼처럼 찾아온 초로의 반백에서 우리는 문득 민낯의 영혼을 마주한다. 자신의 내면이다. 누구나 청춘을 맞이하듯이 어느새 노년의 세월을 만난다.

코로나19로 지친 영혼은 때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 너머의 세계는 너무 멀리 있어서 좀처럼 다가오지 않는다. 저출산 노년의 시대에 늙음과 죽음은 아주 가까이 있어 새해 벽두 화제로 이보다 절실한 것은 없지 않나 싶다.

불멸의 욕구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살고자 하는 인간 내면의 파토스를 반영한다. 이집트의 파라오들은 부활을 꿈꾸며 살아생전 자기가 잠들 피라미드를 세웠다. 진시황은 삼천갑자 동방삭에게 영원히 사는 비결을 물었고 1천명의 동남동녀를 동쪽으로 보냈으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의 집단탈출은 영구미제 사건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신라의 문무왕은 죽어서 호국용으로 부활했고, 할리우드는 해마다 피라미드에서 죽은 미이라를 불러낸다. 순장 풍속이 있는 가야왕국의 백성들은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왕의 안부를 물었다. 왕이 죽으면 한마을의 모든 백성을 줄 세워 선별해 어린애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십 명을 골라 왕과 함께 산 채로 묻었기 때문이다.

작가 김훈은 순장이 무서워 날마다 신라로 귀순하는 가야인들의 슬픈 역사를 우륵의 가야금 얘기를 소재로 한 현의 노래에 담고 있다. 가야는 순장이 무서워 탈출하는 백성들의 엑소더스로 인해 소멸했다.

왕족으로부터 명망가와 유명인이 묻히는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불멸의 꿈을 간직한 이야기의 요람이다. T.S 엘리어트, 윌리엄 워즈워드, 세익스피어, 찰즈 디킨스, 제인 오스틴, 과학자 뉴턴, 찰즈 다윈 등 천여 명의 영혼들은 지금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자신들의 얘기를 들려준다. 왕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대관식을 올리고 죽으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흡혈귀를 그린 영화 드라큐라 백작은 잊을만하면 리메이크된다.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처음 맛본 음식은 무엇일까? 태어나서 처음 먹은 것은 엄마 젖이고 자궁에 착상한 후 영양공급조차 안 되는 처음 3일간 아기씨가 맛본 것은 엄마의 자궁을 파고들어 먹은 피였지 싶다. 뱀파이어 전설은 인간 내면에 깊이 숨은 피의 신화, 부활을 노래하고 있다.

신비로운 아즈텍 문명을 건설한 마야인들은 피칠을 한 태양신의 사원에 펄펄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심장을 바치기 위해 인신 공양을 업으로 삼았다. 1만명에 가까운 포로들을 모두 죽여서 심장을 공양한 적도 있다. 젯상의 피가 마르면 태양이 멈추고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믿었던 종교 때문에 마야는 미쳤다. 자국의 청년들에게 축구를 시켜서 최종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팀원들의 심장을 젯상에 올릴 때 마야국의 심장도 함께 멈췄다. 불멸의 욕구 때문에 민족이 말살됐다.

죽고 사는 것이 마음대로 안 되는 인간에게 노화는 저주였고 패배였다. 노화는 세포의 감소와 재생불가로 설명되는 의학의 원리를 넘어 저승의 신화와 부활의 종교를 만들어냈다. 인간은 왜 늙을까? 언제든 죽는 인간에게 노화의 끝에 오는 죽음은 축복일까? 소멸일까? 단세포에서 출발해 다세포로 분화 성장하고 장수 동물로 기록된 인간에게 죽음은 언제나 반갑지 않은 손님이었다.

인간은 70세가 되면 본래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세포는 소멸되기 시작하고 장수의 비밀을 담은 텔로미어 DNA는 줄어들어 재생하지 않는다. 텔로미어가 손실되면 유전정보는 사라지게 되고 텔로미어의 손실로 분열을 멈춘 세포는 분열이 정지되면서 죽음으로 이어진다. 심장정지는 세포의 소멸로 완성된다.

생물학적으로 노화와 죽음은 텔로미어의 손실과 세포분열의 정지로 설명된다. 죽음의 진실은 별로 신비하지 않고, 죽었다 살아 온 인간의 얘기는 항용 전설이나 신화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1만 년 전 살아있는 채로 얼어붙은 빙하 속의 맘모스에서 세포를 재생시켜 복제하고자 하는 유전공학이 선보이면서 한국에서도 줄기세포의 기적과 부활의 이적을 기대하는 백성들의 염원이 서울대 황우석 박사의 개 복제 성공 신드롬으로 들끓었다가 이내 물거품처럼 사그러든 적이 있다. 모두 죽기 싫어서 달려든 욕망이었다.

현대과학이 미이라의 세포를 복제해 이집트의 파라오를 불러내고, 백악기에 날던 익룡을 서울 상공에 다시 띄울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그날이 오면 부활해 다시 세상의 공기를 마시고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하면서 냉동인간이 되었다. 현대판 미이라다. 그들의 앞날에 축북이 있기를 진심으로 빌 뿐이지만 부활의 가능성은 아직 은하수 건너편에 있다. 늙음과 죽음의 서(序)를 생각하며,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권력과 조직을 끌어안고 눈만 뜨면 대국민 선전포고를 하듯이 국민에게 엄포를 놓는 판검사들의 욕망을 떠올린다. 모든 것이 헛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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