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봄꽃이 한창이던 시기에 출범한 문재인 정권도 비슷한 궤도를 그리고 있다. 국정 농단 사태의 뒤 끝에 성난 민심을 단숨에 사로잡아 취임 초기 역대 대통령 최고의 지지도를 달리며 순항했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인사청문회를 기점으로 국민의 신뢰가 곤두박질했다. 그 무렵 성난 민심을 달래주지 못한 것이 화근이 돼 문재인 정권의 풍랑은 시작됐다. 망망대해에서 태풍에 휩쓸리는 일엽편주 같은 모습이 시작됐다. 총선이 반전의 기회가 될듯싶었지만, 반전은 없었다.
직전 정권을 무너뜨릴 때 가장 자극적으로 민심을 동요시킨 말은 “이게 나라냐?”였고, 현 정권이 출범하면서 국민에게 가장 강하게 어필했던 말은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보이겠다”였다. 정권 말기로 접어드는 현시점에 이 두 말은 이제 조롱과 비아냥이 돼 현 정권을 향한 비수가 되고 있다. “이게 나라냐?”라는 말은 부메랑이 됐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말은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뭐가 바뀌었고, 과거 정권과 뭐가 다르냐?”는 실망이 들끓고 있다.
이제 시간이 얼만 남지 않았다. 코로나가 국정 전반의 발목을 잡은 것은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이곳저곳에서 전략 부재의 아마추어리즘이 이어진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국민의 신뢰가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어디가 잘못돼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다. 부동산 정책의 패착으로 순식간에 집값이 수억 원씩 급상승한 것은, 민심을 떠나보내는 직격탄이 됐다. 전략 부재 속에 대국민 설득 없이 엉성하게 시작한 검찰 개혁은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내지 못한 채 검찰과의 힘겨루기만 이어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이어진다면 다른 정권보다 레임덕이 더 빨리, 더 심하게 닥쳐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당장 오는 4월 7일 예정된 보궐선거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차갑기만 하다. 5년의 세월은 길지 않았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는 데 벌써 임기의 7할 이상이 지났다. 이제 1년 하고 수개월이 남았다. 차기 대선을 치르고 나면 잔여 임기는 별 의미가 없으니 실상 일할 수 있는 기간은 1년 남짓이다. 남은 1년에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지금껏 문재인 정권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보여줬다고 인정하는 국민은 소수의 맹목적 지지자뿐이다. 딱히 내세울 성과가 없다. 기대가 너무 컸던지 실망도 그만큼 커 보인다. 지금과 같은 동력으로는 개헌의 큰 파도를 넘을 성싶지 않다. 약속했던 역사적 사건의 진상 규명도 임기 내 실현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가장 역점을 두고 추진한 국정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뚜렷하지 않다. 노무현 정권은 국토균형발전의 초석이라도 다졌지만, 이번 정권은 내세울 게 없다.
제대로 일할 수 있는 남은 1년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 개헌이든, 과거사 진상 규명이든, 검찰 개혁이든 무엇 하나라도 제대로 성과를 내야 한다. 남은 시간을 고려할 때 잔여 임기 중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든다는 것은, 과욕에 불과하다. 대다수 국민은 현 정권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기의 실패 원인을 ‘내 식구 감싸기’에서 찾고 있다. 당사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언정 국민은 그렇게 믿고 있다. 남은 1년간 무얼 할 수 있을지 국민은 궁금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