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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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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1.25 13:3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
이지숙 작가·칼럼니스트
긴장되는 한 주가 지나고 주말이 다가와 최대한 편한 자세로 앉아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예능 프로를 보던 중 순간 멈칫했다. 지난해 12월 어느 토요일 예능 프로에서 윤종신의 ‘나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는데 노래 가사가 너무 가슴 깊이 와 닿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이 먹는 것이 싫어졌고 나이라는 단어에 작은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만큼 내가 점점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론 나이가 더할수록 마음이 편해지기도 하면서, 말에 대한 책임감과 품격을 생각하게 된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의 무게가 더해지고 연장자로서 품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들지 않았다거나 어른 같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말을 잘하는 게 아니라 적절한 때에 말을 거두고 진심을 나눌 수 있느냐 하는 것”이라는 어느 책 글귀처럼 어떤 말을 하기보단 하지 않는 적절한 시점을 나이가 더할수록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는 사람은 실언할 확률이 높아지므로 때로는 말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존중받고 싶으면 남을 더욱 배려하는 자세 또한 연장자가 가져야 할 덕목이다. 대접만 받기를 원해서는 욕을 먹기 십상이다. 서로 배려하는 자세로 인간관계를 차곡차곡 쌓아야 한다. 이처럼 나이가 든다는 것은 지켜야 할 준수사항이 더욱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좀 더 외로움을 견뎌야 하는 시간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안타깝지만, 삶의 긴 여정 속에서 마지막 구간에 진입하는 통과해야 할 구간이다. 예전의 독선과 아집은 나이 든 사람들이 피해야 할 친구이다.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돈주머니는 열라”는 말이 있듯이, 조금 손해 보는 것 피하려다 더 크고 소중한 거 잃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70이 넘은 어르신이 “나이가 들수록 특별히 재미있는 게 없고 그다지 새로운 희망도 없는 것 같다”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고 순간 울컥했다. 왠지 서글픈 마음과 함께 작은 먹먹함이 밀려들었다. ‘삶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라고 누군가 표현했듯 나이가 든다는 것은 결국 삶의 종착역에 점점 가까워지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러나 나이가 든다는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서글픈 것만은 아니다. 한 폭의 그림이 완성되는 충만함과 함께해야 할 일을 다 완수한 안정감도 있을 것이다. 감정적으로도 절제의 미와 매사 단련된 노련함이 생기고, 모든 것에 관조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룰 수 없는 헛된 욕심을 갖지 않고 지금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지혜도 겸비하게 된다.

나이가 들면서 당연히 새로운 도전에 대한 망설임과 두려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도전에 대한 선별력을 갖게 되는 혜안이 생긴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세월에 가속도가 붙게 되는 것을 절감하면서 이제 버릴 건 버리고 어깨에 짊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아야 할 시간을 의미한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좀 더 자유로운 영혼에 접근했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은 유한하고, 유한한 인생에서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은 나약할 수밖에 없다. 점점 약해지는 심신으로 우리들은 무력감을 느끼게 되고, 주위 관계와도 존재 자체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단절해야 하는 시간도 올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인생 1막을 끝내고 2막, 3막을 기다리는 중년과 노년의 모습은 무르익어가는 인생의 찐 맛을 아는 여유로운 모습으로 시나브로 다가온다. 그동안의 열연도 아름다웠고, 다가올 미지의 세계에 대한 우리의 연기도 감동스러우리라 믿는다. 비록 건강이 나빠지고 얼굴 곳곳에 주름살이 늘어 예쁘지 않은 모습으로 변모해도, 빛나는 열정과 꿈을 잃지 않고 간직할 수 있다면 나이 드는 것이 슬픈 것만은 아닐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지금보다 더 아름다운 절경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제 나이 드는 것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말고 흐르는 세월과 당당하게 대면하여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펼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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