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한테 당한 어느 공공의료기관의 푸념
바이러스한테 당한 어느 공공의료기관의 푸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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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1.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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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석 천안의료원장
이경석 천안의료원장
이경석 천안의료원장
'착한 적자’를 만성적으로 되풀이하던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이 2013년 결국 문을 닫았다. 그런데 2020년 벽두부터 불어 닥친 코로나19의 엄청난 확산으로 공공의료에 대한 관심과 함께 이에 대한 요구가 커졌다. 요구가 큰 만큼 적지 않은 전문가들이 다양한 대책과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공공의료 기반이 확충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한데도 현실은 그렇게 녹녹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최근 건강보험연구원에서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전략’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공공병원의 구체적인 역할로 ▲표준 진료 및 모델병원 ▲지역거점 공공의료기관 ▲국민건강증진을 위한 병원 ▲전염병 및 재난대비 의료기관 ▲정책집행 수단 및 시험대(Test-bed)라는 5가지 역할을 제시했다.

물론 모든 공공의료기관이 위에 제시한 5가지 역할을 한꺼번에 해낼 수는 없다. 규모와 능력에 따라 맡는 역할도 다를 수밖에 없으리라 본다. 천안의료원은 충남도립 종합병원으로 5가지 역할 모두를 부분적으로라도 맡아 수행해야 하겠지만 이중 에서도 지역거점 공공의료기관의 역할과 전염병과 재난 대비 의료기관 역할을 잘 맡아야 하는 입장이다.

천안의료원은 지난해 코로나 전담병원 지정으로 진료환자가 2019년 대비 입원환자 55.7%, 외래환자 26.8%, 건강검진58.2%, 응급실 84.7%가 각각 감소했다.

전담병원으로 지정돼 일반 진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진료 감소는 충분히 예상된 결과다. 피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경상수지 역시 해를 거듭할수록 악화하고 있다. 2020년 의업 수입은 진료실적 감소로 211억에 그쳐 전년 대비 137억이 감소했다. 그나마 각종 기부금과 개산급 덕분에 의업 외 수입이 전년 대비 292억이 증가해 수입 감소를 줄였다. 진료가 감소한 만큼 재료비가 줄어 의업 비용이 전년대비 22억 감소해 적자 폭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으나 11억 4000만 원이 넘는 적자를 피할 수는 없었다.

전국 35개 지방의료원의 2019년 당기순이익 산출 결과 17개 지방의료원은 흑자, 17개 지방의료원은 적자로 알려졌다. 의료원에 따라 경영을 잘한 기관과 잘못한 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흑자를 본 지방의료원은 대부분 국비와 지방비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비를 지원받았다면 천안의료원도 흑자를 본 의료원에 이름을 올렸을 것이다.

‘착한 적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인력난에 허덕이는 공공의료기관들의 현실에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다. 첫 번째는 공공의료기관에 양질의 의료인을 확보하기가 정말 어렵다. 천안의료원도 의료진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국공립 대학병원을 제외하고 지방의료원에서 양질의 의사를 고용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제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열악하고 수도권에서 먼 지방의료원일수록 전문의 초빙에 더 많은 급여와 숙소 제공 등 부대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투자만큼 수익이 생기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공공의료기관이기 때문에 수익을 추구해서도 안 된다. 간호사 역시 지방의료원에서 오래 모시기 어렵다. 특히 간호등급제와 같은 새로운 정책으로 수도권 대형병원에서 간호사를 한꺼번에 싹쓸이해 가고 나면 지방의료원에서는 간호사 부족으로 있는 병동도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소방공무원 모집도 지방의료원의 간호사 부족을 악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공공의료기관은 당연히 건강 안전망 사업이나 미충족 보건의료서비스, 기타 사업 등 민간의료기관이 수행하기 어려운 여러 종류의 공공의료 지원을 해야 하는 기관이다. 천안의료원도 많은 공공의료지원 사업을 해 오고 있다.

코로나 전담병원이 당연히 맡아야 할 전염병의 방역이 최우선 순위라고 하더라도 공공의료기관이 아니면 지원하기 어려운 공공의료지원 사업은 축소되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더 큰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건강보험연구원이 발표한 ‘공공의료 확충의 필요성과 전략’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12월 말 기준 공공의료 기관은 221개로 전체 의료기관 4034개소의 5.5%, 공공병상 수는 6만1779병상으로 전체 9.6%에 불과하다.

일반 국민들은 공공의료기관을 민간의료기관과 같은 의료시장에서 경쟁하는 의료기관의 한 종류로 인식하고 비효율적이며 의료 질이 낮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한다. 이러한 인식은 현실에서 전문가의 평가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낮은 수준의 의료를 제공하면서 병상도 전체의 10%도 안 되는 비효율적인 공공의료기관이 민간의료기관과 같은 의료시장에서 경쟁한다면 그 결과는 자명하다.

양질의 의료진을 확보하기도 어려운 여건에서 수익성이 거의 없는 공공의료를 수행하면서 민간의료기관과 경쟁을 통해 경영을 정상으로 유지하기란 죽었다 깨어나도 제정신으로는 불가능하다. 공공의료기관은 경쟁 대신 민간의료기관이 기피하는 영역을 맡아야 한다. 수익이 아니라 공익에 집중해야 한다.

문득 거금을 들여 공공의료기관을 짓고 비효율적인 운영을 하느라 만성 적자를 메꾸는 대신 민간의료기관을 이용하게 하고 그 비용을 공공이 감당하는 게 더 싸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더구나 병상 과잉지역의 공공의료기관인 천안의료원의 경우 더 많은 병상을 확보하는 것과 같은 양적 성장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아 보인다.

그보다는 제대로 지원하고 관리해서 경영 논리에 휘둘리지 않는 공공의료를 잘 할 수 있도록 질적 성장을 적극 도모할 필요가 있다. 기왕 있는 공공의료기관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면서 양적 성장을 하겠다는 것은 외양간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새 외양간을 짓겠다고 우기는 꼴이 아닐 수 없다. 이미 있는 공공의료기관 부터 제대로 관리하고 운영하길 바란다.

사심 듬뿍 담긴 한마디를 덧붙이자면 부디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고생한 일부 지방의료원들이 수억 원의 적자경영에도 불구하고 의료원장에게 수천만 원 대의 성과급을 지급한다고 비난하거나 적자 폭이 커서 한 푼도 못 받는 게 당연하다는 기사는 안 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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