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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잘 버티기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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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2.01 14:22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제약이 더해질수록 우울감이 심해지고 몸이 근질거리며 병이 날 것 같다. 몸이 찌뿌둥하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것 같다. 목이 조금만 아파도 예민해지고 몸살기만 아파도 역병을 의심하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심병인 걸 알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움직일 수 없으니 몸도 마음도 구속된 것 같고 시간마저 멈춘 것 같다.

휴업과 개업을 반복하던 남편 회사는 잠정 폐업신고를 하고 말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어찌해볼 도리가 없어서다. 어디 우리뿐이겠는가. 속이 새까맣게 타는 소상공인들은 기약 없는 세월 속에 가슴만 칠 뿐 뾰족한 수가 없다며 울상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티브이에서 발표되는 코로나19 감염자 수를 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줄어들면 이제 끝이 보이겠지 희망을 갖다가도 확진자 수가 늘어나면 속이 답답해지면서 열이 나면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백 명만 나와도 가슴을 쓸어내렸는데 천명이란 숫자에는 아연실색할 뿐 더 이상 말이 되어 나오지 않는다.

처음에는 될 수 있는 한 집에 머물러 달라는 말을 실천하며 오로지 집안에서만 걷기 운동을 했다. 한두 달이면 끝나려니 하던 코로나19는 일 년을 넘기며 국민을 위협하고 있다. 우울증 환자가 급증한다고 한다. 씩씩하던 나도 힘들어 한숨이 나오더니 의욕이 저하되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답답한 마음을 풀고자 밖으로 나가니 푸른 잎을 떨군 나목들이 앙상하게 찬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떨고 있다. 오로지 바람만이 세상에 남은 듯 허허롭다. 집과 아무도 없는 조용한 시골길을 찾아서 걷는 게 일과가 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처음엔 답답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걸었다. 아무리 공기 좋은 시골이고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더라도 혹시나 지나치는 사람이 있을까 마스크를 썼다. 봄, 여름에는 주변의 경치도 감상하고 나뭇잎 사이로 비추는 햇살을 느끼니 나름 행복했다. 겨울이 되어도 가라앉지 않고 기승을 부리는 코로나19는 두 개의 마스크로 중무장을 하게 했다. 걷기 시작한 지 일 년이 되니 이제 습관이 된 것 같다. 일이 있어 걷지 못하면 뭔가 잃어버린 것 같다.

겨울이 되니 푸른 잎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던 오솔길 옆 나무들이 잎을 떨구고 나목이 되어 지난여름 무성했던 잎을 그리워하고 있다. 시원한 바람으로 땀을 식혀주고 강한 햇살을 잎으로 막아주던 나무들이 옷을 벗자 나뭇잎 속에 감추어져 보이지 않던 속살이 드러난다. 인간의 온갖 추한 행동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커다란 냉장고, 소파, 선풍기, 집안에서 쓰던 온갖 집기들과 건축 폐기물 등. 생각도 하지 못한 쓰레기들이 쌓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누가 이 먼 산속까지 와서 쓰레기를 버리고 간 것일까. 여기까지 가지고 오는 것이 더 힘들 건데 어떤 마음으로 여기까지 왔을까. 돈 몇 푼 아끼자고 자연을 훼손하는 추잡한 행동을 하는 사람의 어떤 사람일까. 버리는 것을 보았더라면 나무라겠지만 언제 버리는지 알 수 없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남편은 가끔 비닐봉투를 들고나와 버려진 것 중에서 가벼운 것들을 주워 온다. 엊그제는 쓰레기를 줍는다고 커다란 봉투를 들고 나왔다. 곳곳에 먹고 버린 캔들이 길가와 풀숲에 참 많이도 버려져 있다. 남편은 부피를 줄이기 위해 캔을 발로 밟아서 얇게 한 다음 가지고 왔다. 큰 봉투에 한가득이다. 후진적 국민성은 언제 탈피할 거냐고 투덜거려 보지만 이런 것을 주워오는 것밖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아름다운 산천이 황폐해가는 것에 화가 난다. 공기가 좋은 시골이라 좋아했더니 이런 모습을 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작은 것들이라면 우리가 치우면 되겠지만 너무 많은 쓰레기양은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보이는 쓰레기 때문에 마음만 상하기에 휴대폰으로 외국어 공부를 하며 눈을 돌리기로 했다. 휴대폰을 보느라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니 화가 덜 나는 것 같다. 나이가 드니 배운 것은 시간 지나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지만 계속 듣다 보면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듣는다. 걸으며 남편과 길가의 나무들과 함께 듣지만 집에 오면 외국어는 오솔길 나무들에게 다 걸어놓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무는 잊지 않고 있을까. 내일 가서 외국어가 잘 있는지 나무에게 물어봐야겠다.

집에 오면 뻐근한 다리를 풀어주고 피로도 풀 겸 반신욕을 한다. 책을 들고 가서 읽는 데 집중도 잘되고 시간도 절약된다. 온몸에 땀이 흐르며 노폐물이 빠져나오니 혈액순환도 잘 되는 것 같다. 책도 읽고 반신욕도 하고 나면 밤에 잠도 잘 오니 일석삼조다. 30초 손 씻기로 하라는데 아예 온몸을 뜨거운 물로 소독하니 괜찮겠지.

한 달 만에 가도 왜 이제 오냐며 서운해하는 어르신들을 못 뵌 지 일 년이 되어간다. 나태해져 가는 자신에게 채찍을 가하고자 색소폰을 불고 노래 연습도 한다. 이 어려움이 끝난 후 찾아뵐 어르신들을 생각하며.

코로나19가 온 국민의 발을 꽁꽁 묶어 놓지만 나름 시간을 쪼개며 알차게 하루를 보내야겠다. 지쳐가는 마음을 다스리며 잘 버텨보련다. 마스크를 벗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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