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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팬데믹 세상 건너기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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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2.07 14:5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정관영 공학박사·우석대학교 건축학과 객원교수
온 인류를 강타한 이례적 바이러스로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 감염자와 의료진은 물론이거니와 그들 가족과 자영업자들이 겪는 경제적 고통도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고, 사회 인프라 전반에 미치는 보이지 않는 손실과 어려움은 체감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이다. 일 년 남짓 계속되는 팬데믹 과정에서 전문가들은 가장 안전한 대응으로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를 강조한다. 그간 인류가 축적해온 엄청난 의학 발전으로도 검증된 안전한 백신을 개발했다는 소식이 들려도 내키지 않는 마음은 여전하다. 가장 안전한 대책이 마스크 착용과 손 씻기란 사실은 작고 귀찮은 일에 충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이런 와중에 무주군청을 가려고 새벽기차를 탔다. 모두 창가에만 자리를 배치하고 철저하게 방역수칙을 계도하고 있었다. 마침 증평역에서 목포역까지는 오송역에서 환승이 가능해 번거로움을 덜었다. 드디어 목포역에 다다르니 시간여유가 있어 모처럼 구두방을 들렸다. 가게주인장은 구두를 살펴보더니 구두 뒤 굽이 많이 달았다며 구두 본체까지 닳겠다고 걱정을 한다. 구두 닦으려고 갔다가 일이 커졌다. 굽을 교체해 달라고 했더니 말이 떨어지자마자 구두수선을 하면서 구두 접히는 부분도 헤어져서 손을 보고 있다고 한다. 기다리는 동안 벽을 보니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해 주기도 했고 소녀가장을 도와주며 봉사활동을 한 기사들이 빼곡하다. 탁자 위에는 목포시장에게 받은 ‘봉사 왕’ 감사패가 돋보인다. 새 구두를 만들어 주셔서 고맙다고 덕담을 나누며 봉사 시 사용토록 성금을 드렸더니 귀인을 만났다며 웃는 모습이 소년처럼 환하다. 구두를 닦으며 어렵게 살아가면서도 이웃을 섬기며 봉사를 생활화하는 그가 선자(善者)처럼 느껴졌다.

목포에서 무안까지 시내버스 노선이 연결되어 있어 한시름 놓았다. 정류장에서 얼마를 기다려 버스를 탔더니 한 시간 걸려 무안에 도착했다. 오찬을 하려고 주위를 살펴보니 무주군청 옆에 ‘생선예찬 낙지예찬’이란 간판이 눈길을 끈다. 옳거니 하고 들어서니 입구에 세면대가 있어 손을 씻을 수 있도록 시설해 놓았다. 물차가 있는 것을 보니 신선한 낙지와 생선을 공수해 오는 듯하다. 내부 모습도 우드톤의 인테리어로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주인은 혼자 식사를 해야 하는 나를 반기며 연포탕을 권한다. 좋다며 오찬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출장길에 식사를 제대로 하라는 인사가 입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점심 메뉴는 연포탕이라고 했더니 낙지는 쓰러진 소도 다시 일으킨다는 말이 있다며 최고의 스태미너 음식이라고 사족까지 덧붙인다. 잠시 후 기본 밑반찬도 먹음직스럽게 나오지만 함께 나온 전복, 새우도 싱싱해 보인다. 무안 세발낙지가 유명해서 낙지 맛집을 검색해 보니 애초부터 명성이 있는 집이었다.

연포탕(軟泡湯)은 산낙지를 각종 채소와 함께 넣어서 익혀 먹는 음식이다. 대개 낙지를 매운 고추장 양념에 곁들여 먹는 것과 달리 낙지를 그대로 조리해 담백한 맛을 살리는 것이 연포탕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양의 상징인 낙지요리는 쫄깃하고 통통한 바다의 산삼 낙지로 날것이면 날것, 요리면 요리, 모두 각양각색의 맛과 영양이 담뿍해 신선한 별미 요리로 손색이 없다고 한다.

더욱이 각종 무기질과 양질의 단백질을 풍부하게 함유한 낙지는 칼로리가 낮고 지방 함량이 적어 여성들의 대표적인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낙지가 가진 철분과 칼륨 성분은 체내 나트륨을 배출하고 혈압의 수치를 정상화시켜 심혈관 질환에 도움을 주며, 빈혈개선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낙지에 함유된 타우린 성분은 콜레스테롤 저하는 물론 암세포 생장 억제, 간세포 활성화 등의 효과가 있기 때문에 성인 남녀를 비롯한 임산부나 노 약자 층에게도 몸에 부담을 주지 않는 매우 유익한 식재료 입니다. 낙 지의 특이한 맛 성분은 주로 베타인이며, 신경을 안정시키는 아세틸콜린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양념을 하지 않아도 낙지의 담백한 맛과 쫄 깃한 식감을 생생하게 맛볼 수 있어 별미로 꼽히니 마음 놓고 드십시오.”

구두방 주인장 못지않게 손님을 위한 배려일까 낙지의 좋은 점을 크게 확대하여 고객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볼 수 있도록 게시해 놓았다. “오늘 잘 오셨습니다. 낙지는 갯벌에 사는 산삼이라고 했으니 낙지 국물이 우러난 시원한 육수만 마셔도 힘이 절로 솟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고객이라도 얼마나 소중한 이웃이냐며 주인은 연포탕을 내어놓고 연실 웃음이다.

아주 오랜만에 융숭한 대접을 받은 느낌이다. 곁들여 나온 반찬들도 골고루 맛을 보았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각각의 접시에 양을 조금 적다 싶게 담아내온 것이다. 주인 마음은 바다처럼 넓은데 반찬을 너무 적게 담으면 어쩐지 그래 보이는데 주인 말을 들어보니 생각이 깊었다. “요즘 먹는 것이 많아서인지 손님들이 그리 많이 그릇을 비우지 않아요. 남은 음식을 다시 놓을 수는 없고 버리는 것이 너무 마음 아픕니다. 작다 싶으면 더 드리면 되고 그래서인지 손님들도 더 맛있게 잡숫는 것 같아요.” 어떤 작은 일이라도 철학과 사유가 깃들면 전문가가 된다. 주인의 연포탕도 수준급이고 상차림도 나름 예술이다.

필자도 평소에 음식물 과소비에 버려지는 식품들이 아깝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전 세계에서 생산된 음식물 가운데 3분의 1은 쓰레기로 버려지고 있으며, 음식물 쓰레기의 증가는 기후변화를 악화할 위험도 품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 것도 사실이다. 식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물과 비료, 연료가 소비되기 때문에 음식물 쓰레기의 증가는 경제적으로 낭비일 뿐 아니라 직접적인 환경오염의 원인이 된다. 또 음식물 쓰레기는 매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매립지에서 메탄가스 같은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음식물 쓰레기 탓에 발생하는 연간 온실가스의 양은 약 33억 톤으로 세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7%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음식물 쓰레기 방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2030년에는 음식물 쓰레기가 한해 약 659조원으로 증가할 수 있다고 하니 특히 우리나라 음식문화도 돌아볼 때가 된 것이다.

귀중한 것이 빛나듯 음식도 절제할 때 빛난다. 하물며 동물들도 자신의 배가 부르면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어도 먹지 않는다. 절제된 식생활은 건강을 지키는 으뜸이다. 먹는 문화란 단순한 식도락의 차원이 아니다. 음식 요리는 생명이 함께하는 하나의 종합 예술로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이다. 식탁은 배고픔을 채워주는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의 사랑과 정을 나누고 교육이 이루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푸짐하게 차려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먹을 만큼 정갈하게 감사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는 새로운 음식문화가 절실한 요즈음이다. 우리 사회가 최근 쉽게 분노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데는 사랑과 유대가 없는 어쩌면 무절제한 식탁에서 밥상머리 교육이 실종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오늘의 오찬 연포탕은 주인의 권유로 탁월한 선택을 한 듯하다. 식당을 나오며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다음에 또 와도 되느냐고 인사했더니 해맑은 웃음으로 응수하는 따스함이 가슴에 와 닿는다. 구두방 주인장의 밝고 건강한 웃음과 어려움 중에 펼쳐가는 봉사의 삶도 가슴을 훈훈하게 한다. 절제, 절약, 봉사로 작은 나눔을 이어간다면 팬데믹 세상도 어렵지 않게 건널 수 있다.

더욱이 ‘무안군 진입로경관 조성사업 및 설계용역 제안서 평가위원회’에 참여하기 위해 달려온 각지의 석학들과 마주하니 반가운 마음이다. 심도 있는 의견을 개진하며 분명 아름다운 무안의 관문이 탄생한다고 생각하니 가슴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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