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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2월의 학교는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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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2.23 14:2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동료 교사가 다른 학교로 발령이 났다. 맞은편 자리에 앉아 일 년을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며 함께 생활하던 좋은 직장동료였다. 매사에 손과 발이 빨라 솔선수범은 기본이고 재잘재잘 참새를 능가하는 분위기 전도사였다. 우리는 그녀로 인해 언제나 즐거웠고 힘든 일도 힘들지 않은 듯 늘 하루가 봄날 같았다.

다른 한 교사는 이번에 재계약을 하지 못했다. 하루에 네 시간만 일하는 시간제 교사였는데 부득이하게 올해는 한 반이 줄어 계약연장을 할 수 없었다. 하루 반나절의 짧은 날들이었지만 누구보다 밝은 긍정의 에너지로 동분서주하며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깊은 사랑을 가르쳐준 멋진 사람이었다. 본인은 이참에 실업급여를 타며 재기의 기회로 삼겠노라 의연했지만, 그 뒤에 감춰진 아쉬움을 남아있는 이들은 안다.

떠나는 사람이 있으면 들어오는 이도 있다. 올해 우리 학교에는 관리자부터 신규 발령받는 교사까지 대여섯 명이 들고 났다. 편안한 일상복 차림에 짐을 들고 있으면 떠나는 사람이고 말쑥한 정장에 반짝이는 구두를 신고 교무실이 어디냐 길을 물으면 그는 필시 들어오는 신규 교사다.

2월은 학교라는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만큼은 특별한 달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정리의 달이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발판의 달이다. 사계절을 함께했던 아이들을 졸업시키고 텅 빈 교실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달이며 다시금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교실을 꾸미고 이름표를 바꿔 달며 준비하는 기다림의 달이다. 떠나고 떠나보내며 온갖 감정이 교차하는 만감(萬感)의 달이다.

또한, 밖에서 들여다보는 학교는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 한없이 고요한 휴면의 공간이지만 안에서의 일상은 떠나는 사람의 인수인계와 새로이 들어오는 사람과의 인사 등으로 더없이 어수선한 곳이다. 남아있는 이들은 배정받은 교실을 찾아 소위 이사라는 것을 하며 새로운 학기를 준비하느라 하루해가 노루 꼬리보다도 짧은 공간이기도 하다. 저마다의 길을 찾아 방향을 잡고 둥지를 틀고 새로운 시작으로의 준비에 더없이 분주한 공간이다.

들고 나는 교사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사람의 성향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다. 어떤 교사는 자신이 지난 일 년 동안 생활했던 공간을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쓸고 닦으며 최선의 애정을 남겨놓는다. 새로 들어올 다음의 주인에게 주는 최소한의 배려이다. 교실사용 후기 설명서를 친절하고도 상세하게 남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청소도 정리도 형편없이 ‘누가 오든 난 모르쇠’로 일관하는 이도 있다. 조금만 마음을 써서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되새긴다면 좋으련만.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개학도 서너 차례나 미루고 입학식도 치르지 못했다. 그러나 올해는 올망졸망 귀여운 아이들과 입학식도 하고 등교 수업 역시 시행한다고 하니 이보다 반가운 소식이 또 어디에 있을까. 무릇 학교란 파릇파릇 새싹 같은 아이들 웃음이 교정에 가득하고 하늘 끝에 닿을 듯 열정 넘치는 우리 교사들이 함께해야 비로소 완전체인 것을….

지금의 이 학교를 떠나 새로운 곳에서 새로이 생활할 우리 선생님들! 부디 어느 곳에서든 따뜻한 말 한마디, 배려할 줄 아는 작은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평생 등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를 빈다.

부득이하게 학교를 떠나야 하는 나의 든든했던 동료여! 조급함은 잠시 뒤에 두고 찬찬히 준비하며 자기만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멋진 교사로 다시 재회할 수 있기를 나는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아이들아! 교문을 활짝 열어 놓고 너희를 기다린다. 따뜻한 햇살에 하루가 다르게 벙글어지는 봄꽃처럼 어서 오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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