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 3월 독립운동가 이인정·송재만·한운석
독립기념관, 3월 독립운동가 이인정·송재만·한운석
  • 장선화 기자 adzerg@naver.com
  • 승인 2021.03.01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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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인정(1859~1934), 송재만(1891~1951), 한운석(1884~1950) 선생(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왼쪽부터 이인정(1859~1934), 송재만(1891~1951), 한운석(1884~1950) 선생(사진=독립기념관 제공)
[충청신문=천안] 장선화 기자 = 독립기념관(관장 한시준)은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이인정(1859~1934), 송재만(1891~1951), 한운석(1884~1950) 선생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이들은 당진 대호지·정미 3.1운동에서 주요한 역할을 한 인물들이다. 당진 대호지·정미 3.1운동은 광무황제 국장(國葬)에 참여하고 돌아온 도호의숙(桃湖義塾) 출신의 대호지 유생들이 서울의 3.1운동을 전하고 대호지면에서의 독립운동을 구상하면서 시작됐다.

대호지면사무소 직원을 중심으로 준비가 진행되는 가운데, 세 선생은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고 실무를 주도했다. 송재만은 ‘도로 보수를 위한 협조 요청’ 공문을 마을 구장(區長)에게 전달하고 마을 주민들이 시위장소로 모이도록 했다. 또 도호의숙 훈장 한운석에게 독립운동 취지를 설명하며 애국가 제작을 요청했다.

송재만의 제안을 받은 한운석은 독립운동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독립의지를 굳건히 하는 내용의 ‘애국가(愛國歌)’를 만들었다. 시위 당일인 4월 4일 대호지면사무소 앞에 마을 주민 4~500명이 결집했다.

면장 이인정은 마을 주민들에게 집합 이유가 사실 도로 수선이 아닌 독립운동을 위함이라 말하고 정미면 천의(天宜)장터로 나아가자고 연설한 후 “조선독립만세”를 소리 높혀 외치며 군중들을 지휘했다.

송재만은 전날 광목천 3척(尺)으로 제작한 태극기를 흔들며 이인정과 함께 약 7㎞ 정도 떨어진 정미면 천의장터를 향해 만세 행진을 이끌었다. 천의장터에 도착하자 장터에 모인 사람들도 합세해 1000여명의 군중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만세 군중들의 위세에 눌려 관망하던 일제 경찰은 오후가 되어 귀가하려는 민중들의 태극기 탈취를 시도했으며, 여기에 저항하는 군중들에게 당진 경찰서 순사 니미야(二宮)가 권총을 발포했다.

일제의 비인도적 탄압에 분노한 송재만·한운석 등은 일제 경찰에 강력히 저항했다. 일제 경찰은 다음날인 4월 5일부터 본격적으로 관련자를 탄압하거나 체포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이인정·송재만·한운석은 일경에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당진 대호지·정미 3.1운동은 관민이 하나 되어 참여한 만세운동이자, 대호지면에서 정미면까지 지역을 넘어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뜻깊은 독립운동이었다. 정부는 당진 대호지·정미 3.1운동을 주도한 이인정·송재만·한운석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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