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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임 마중

이혜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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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4.05 18:36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혜숙 수필가
이혜숙 수필가
아직은 역병으로 염려가 많은 시기이지만 꽃들은 피어 봄을 알린다. 노란 개나리가 웃으며 다가오니 수선화가 미소를 지으며 봄이 왔다고 기지개를 켠다. 영춘화가 피더니 할미꽃에 돌단풍, 괴불주머니까지 활짝 웃는 이 계절이다.

좋은 일보다는 안 좋은 일들로 세상이 시끄럽다. 우리나라 정치도, 경제도 어지럽기는 세계가 똑같다. 역병으로 어지럽고 지구 한 곳에선 같은 민족을 향해 총을 난사하기도 한다. 어두운 소식들로 가득 찬 이때, 임이 온다는 소식이다. 얼마만의 행복인가. 설렘으로 밤잠을 설치고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야 할까 좌불안석이다.

세계가 역병에 몸살을 앓고 있는 때라 걱정도 앞선다. 집 안 구석구석 먼지를 털고 소독을 하고 청소를 한다. 혹시나 미진한 곳이 있을까 둘러보기를 한 달째 하고 있다.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구름을 타고 있는 기분이다.

지난해 온다던 임은 소식을 단절하고 떠나버렸다. 서운하고 아쉬움에 몸을 떨었는데 해가 바뀌고 희망이 움트는 이 봄날에 임 소식을 들으니 왜 아니 설레랴. 일각이 여삼추로 임 올 날을 기다리는데 왜 이리 걸음이 늦는 걸까.

남편도 설레기는 마찬가지인가보다. 매일매일 소식을 기다리며 귀를 쫑긋거린다. 임 맞을 준비는 완료되었는데 아직도 소식이 없어 답답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딸아이의 첫아기가 세상의 빛도 못 본체 가버리고 다시 찾아온 아기가 이번 달에 태어난다. 나올 때가 되었는데 아직 깜깜무소식이다. 성질 급한 나를 닮지 않고 느긋한 성격의 딸과 사위를 닮았나 보다. 나 닮았으면 진즉 나왔을 건데 느긋한 성격을 닮아 아직 안 나오는 거라며 웃는다. 동서는 배에 오만 원짜리 돈을 부쳐놓으면 빨리 나온다며 우스갯소릴 한다.

지난해 복날이 되어 딸에게 먹을 것을 해 가지고 간다고 하니 잠 좀 푹 자야겠다고 나중에 오란다. 그러려니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부담을 주는 것 같아 묻지를 못했다. 엄마가 간다는데 오지 말라고 한 것이 맘에 쓰였는지 조심스럽게 임신 소식을 전했다. 첫째 아이를 뱃속에서 잃은 뒤라 말하기도 두려웠나 보다.

그 후부터는 늘 역병을 조심하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연극을 하는 것도 걱정된다며 마스크 잘 쓰라는 말을 입에 달았다. 가족과의 만남에도 늘 걱정 한다는 소리만 했다. 이건 내가 임신한 건지 딸이 임신한 건지 헷갈릴 정도다.

역병이 세상에 창궐한 지 일 년도 더 지났는데 아직 진정의 기미가 없다. 일 년 동안 역병이 우리에게 올까 봐 노심초사했다. 여행은커녕 외출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임 맞을 준비만을 생각하며 자가 격리로 일관했다. 마스크는 기본이고 남의 집 방문은 꿈도 못 꾸고 명절에 큰집도 가지 못했다. 가족들과 모임은 물론 이웃 사람과의 만남도 조심에 조심을 더했다. 그러기를 열 달이다. 출산일이 다 되었는데 이 녀석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역병의 진정은 아직 기약 없고 백신의 차례는 언제일지 모르고 임은 오는데 더욱 조심하며 애를 태운다. 출산일이 다가오는데 목이 아프기 시작한다. 보건소에 전화를 걸어 목이 아픈데 코로나 검사를 해야 하냐고 물으니 열이 없고 다른 증상이 없이 목만 아프면 병원에 가란다. 그동안 잠잠하던 편평태선이 재발한 모양이다. 건강이 조금만 이상해도 역병을 먼저 걱정해야 했던 지난 시간이 길고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었다. 재발한 병이라도 역병이 아닌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아픈 목을 부여잡고 다행이라 외친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임 마중 준비에 애를 태운다. 코로나 검사를 해야 병원에 갈 수 있다는데 그것도 유효기간이 2일 이내에 받은 거라야 한단다.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데 역병으로 걸음마저 마음대로 못하니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소중한 아이를 맞이하기 위해 온 가족이 노심초사하는데 세상은 나쁜 소식이 많이도 들려준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기들을 함부로 하는 어린이집 교사들. 자기 자식을 방치해서 주검으로 모는 엄마. 조카를 얼마나 모질게 때렸는지 온몸이 만신창이 되어 세상을 떠난 아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앙증맞은 모습에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예쁜 아기일진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애태우며 기다리는 이런 마음으로 맞이했을 아기에게 어떻게.

40을 넘긴 나이에 첫 출산을 하는 딸이 걱정되면서 감사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도 포기하고 결혼과 아이 포기한다고 삼포 세대라 한다. 딸은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아서 너무 감사하다. 늦게나마 할머니 소리를 듣게 해 줘서 고맙다.

아기용품들이 배달되어 온다. 배달되어 온 아기용품은 처음 보는 것도 부지기수요 사용법을 모르는 것도 참 많다. 이런 것이 세대 차이일까. 격세지감을 느낀다.

산후조리원에 보내려 했는데 역병의 영향으로 집으로 데리고 오기로 했다. 젊을 때 같으면 걱정이 없을 텐데 나이도 많고 힘도 부칠 것 같아 걱정은 되지만, 만남의 설렘에 눈이 빠지도록 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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