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나 올해는 강의를 나가는 전라도 정읍에서 일찌감치 벚꽃을 완상하게 되면서 여러 날 동안 벚꽃 길을 걷는 행운을 누렸다. 음성에는 이제 막 봉오리가 맺혔는데 정읍에서 활짝 피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나서 벚꽃이 떨어질 즈음이 되자 음성에서는 비로소 만발했기 때문이다.
꽃은 열흘이면 피고 지는데 올해는 거반 20일 동안을 감상하게 된 폭이다. 봄을 타는지 자주 피곤해지는 요즈음 흐드러진 꽃을 보면 잠깐 모든 것을 잊고 마음까지 환해진다. 꽃들도 저렇게 환히 피는데 우리도 그렇게 웃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길을 나선다. 떨어지는 벚꽃 잎 사이로 오버랩 되는 분이 한분 계셨다. 함께 문학 활동을 하고 있는 문인 대선배로 지금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거동이 불편한 분이다. 그 분은 앞으로 몇 번이나 저 꽃을 볼 수 있을까? 나는 또 몇 번이나 보게 될까? 하는 생각에 갑자기 쓸쓸해진다.
내 나이를 계산하고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고 하면 30번을 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미치자 갑자기 훅 하고 들어오는 느낌이 있다. 30년을 산다고 했을 때는 참 길게 느껴지던 시간이 저 꽃을 30번 본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짧게 느껴졌다. 왜 그랬을까? 곰곰이 생각하니 아마 30년이라는 세월 속에는 희로애락이 다 들어가 있지만 봄꽃 속에는 좋은 것만 아름다운 것만 들어있어 짧게 느껴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며칠 전, 밤 12시가 넘었는데 문자알림 소리가 들렸다. 불면증으로 인해 온갖 노력으로 막 잠이 들던 차라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다 혹시나 이이들에게 무슨 일이 있나 놀라서 열어보았더니 그분이셨다. 몇 글자 써서 보내고 그 다음 또 몇 글자 쓰고 보내서 문자가 아주 길게 들어왔다. 그래서 알림 소리가 계속 난 것이었다.
문자의 내용은 사과즙 잘 받았다고, 감사히 잘 먹겠다고 그리고 몸이 아파 이제는 모임에 나갈 수 가 없겠다는 내용이었다. 잠을 깼다는 짜증보다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과즙은 작년 추석선물로 보낸 것이고 올해 설에는 강정을 보내드렸다. 그 때는 아무런 연락도 없으시더니 뒤늦게 생각난 것처럼 문자를 보내신 거다.
초저녁에 한 숨 주무시고 일어나 목이 말라 뒷 베란다 갔다가 발견하셨나? 이 시간이 문자를 보내기에는 적당하지 않은데 시간관념이 희미해지셨나? 짜증보다는 걱정으로 오랜 시간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당신 작은 딸과 내가 비슷하게 생겼다고 그동안 각별하게 대해 주셨다. 근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문학기행도 같이 다녀오셨고 흥이 많아 그 연세에도 마이크 차례가 돌아가면 사양하는 일 없이 트로트 한가락은 신명나게 부르시고는 했다.
나의 시간과 그분의 시간은 속도가 달랐나보다. 덧없는 것이 세월이라 하지만 슬프다. 더 많이 내려놓고 훨씬 가볍게 살자하는 생각과 내가 뜻한 바대로 살아왔는지 하는 이런 저런 상념으로 그 밤이 더디게 갔었다.
오늘아침 바람에 흩날리며 떨어지는 벚꽃도 참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 언저리에서 그 분이 떠올랐던 것이다. 늙고 병들고 그리고 가는 것이 누구든 피해 갈 수 없는 일인데 나에게도 곧 닥쳐 올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좀 서글펐다.
바람에 피었다가 바람에 지는 벚꽃의 한 살이처럼 우리 삶도 자연의 이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과연 어떤 시점에 와 있는 것일까? 우리 모두는 때로는 꽃으로 때로는 잎으로 때로는 열매를 맺는 나무로 살아가다가 끝내는 한 줌 흙으로 돌아가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도 한때는 꽃처럼 찬란했던 기억은 있을 테니 서글픈 일만은 아니리라.
그 분에게도 이런 찬란한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저녁에는 안부 문자라도 한번 띄워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