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속으로] 미인에게 바치는 꽃
[문화속으로] 미인에게 바치는 꽃
  • 충청신문 dailycc@dailycc.net
  • 승인 2021.04.28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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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진 목원대 교수
최혜진 목원대 교수
최혜진 목원대 교수
2021년 봄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은 돌아와서 때 이른 벚꽃이 찬란하더니 봄비 몇 번에 아쉽게도 향연은 끝나고 말았다. 그 뒤를 이어 가지각색 철쭉과 영산홍이 만발해 가슴을 설레게 한다. 화려한 꽃들이 저마다 앞다투어 피고, 나무들은 신록을 준비하는 계절이다. 진달래가 지면 이어서 피는 연달래, 즉 철쭉꽃들은 4월 말에서 5월 초 절정을 이룬다고 한다. 철쭉의 화려한 자태를 보고 있자니, 어두운 코로나 시대의 터널을 잘 지나가라고 우리를 응원해주는 꽃들인 것만 같다.

그러다 보니 이맘때면 ‘철쭉꽃’으로 마음을 설레게 하던 옛이야기의 인물이 어김없이 떠오른다.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수로부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수로부인은 우리 역사 속 이른 시기에 등장하는 미인으로, 비너스나 모나리자에 뒤지지 않는 아름다움과 품위를 지녔던 여성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라 향가 ‘헌화가’ 속 주인공이기도 하다. 벼랑 끝 철쭉꽃을 따서 바친 노인에 의해 헌사 된 이 ‘헌화가’는 가장 오래된 프러포즈라 할 만하다. 노인은 수로부인을 ‘잡은 암소를 놓게 하신 이’로 묘사하면서 꽃을 바치는 ‘부끄러움’을 고백했다.

수로부인은 어떠한 사람이었길래 이러한 찬미와 존경을 받았던 것일까. 8세기 초 신라가 태평성대를 구가했던 성덕왕 시절의 이야기이다. 강릉태수로 부임해가던 순정공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해변에 멈추었다. 그 앞에는 높이가 천 길이나 되는 돌산 벼랑이 병풍처럼 펼쳐있었는데 철쭉들이 가득 피어있었다. 그러니 아마도 지금 같은 봄에 벌어진 일일 것이다. 수로부인은 아름다운 철쭉을 누가 따다 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뒤를 따르던 많은 일행 중 감히 그 벼랑을 올라갈 만한 사람이 없었다. 오르기도 힘든 벼랑 위의 꽃을 탐내는 그 마음이 혹시 갑질이 아닌가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철쭉과 벼랑을 뛰어넘는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한 문학적 장치니까 말이다.

모든 장애와 위험을 무릅쓰고 수로부인에게 꽃을 따다 바친 이는 암소를 끌고 가던 마을 농부였다. 인근 마을에 살 것이니 지형지물에 익숙하고, 귀한 암소를 데리고 가는 길이니 어딘가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인물임이 분명하다. 해변을 지나던 신임 태수의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꽃은 그 지역 농부에 의해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노옹(농부)은 자신의 일로 이룩한 과업을 겸손해하며 수줍게 꽃을 바쳤던 것이다. 수로부인의 수로는 한자로 물 수(水)에 길 로(路)를 쓰고 있으니 물과 관련된 제사장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농사를 위해 수로부인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을 것이다. 해석이야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지만, 여하튼 부인에게 꽃을 바친 자는 순정공이 이끌던 엘리트 부하들이 아니라 순수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여성에게 친절을 베푼 노옹이었다는 점이 무엇인가 의미심장하다.

수로부인은 순정공의 아내이기도 했지만, 왕비의 어머니이기도 했다. 성덕왕의 뒤를 이은 경덕왕의 첫 번째 왕비인 삼모부인이 바로 수로부인의 딸이었던 것이다. 왕의 삼친, 즉 왕비, 왕모, 왕비모에게만 ‘부인’이라는 칭호가 내려졌다고 하니, 수로부인은 매우 신성한 존재로 여겨졌을 법하다. 더욱이 그녀는 아름다움으로 소문이 나서 이미 그 신비롭고 신성한 존재감이 남달랐다. 그러니 그녀의 아름다움은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암소를 놓고서 벼랑을 올라갈 만큼 절대적인 미였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미모와 관련한 더 큰 사건은 며칠 후 벌어진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동해안 임해정 정자에서 점심을 먹다가 난데없이 나타난 용이 수로부인을 납치해서 바다로 끌고 들어간 것이다. 이때에도 역시 한 노인이 나타나 해결책을 제시한다. 노인은 동네 백성들을 불러모아 막대기로 땅을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게 했다. 많은 사람들의 입은 쇠도 녹인다는 ‘해가’를 부르며 열심히 땅을 두드리자 결국 바다의 용도 다시 수로부인을 돌려주고 말았다니 노래의 효험이 대단했다. 수로부인은 바닷속 일을 말하면서 칠보로 꾸민 궁전에서 향기로운 음식을 먹었다고 전했는데, 과연 이 세상에는 없는 신비로운 향기가 그녀의 옷에서 풍겨나왔다. 하지만 이런 일은 끝이 아니었다. 부인은 절세미인이어서 깊은 산이나 큰물을 지날 때마다 여러 번 귀신들이나 영물들에게 붙들려갔다고 ‘삼국유사’는 전한다.

어느 나라에나 절세미인들이 존재하고 그 아름다움은 역사를 이어가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우리에게는 수로부인 외에도 많은 미녀들이 이야기 속에 존재했다. 하지만 수로부인 이야기가 특별한 이유는 미녀의 요구와 어려움을 해결한 이들이 바로 그 지역의 촌부 혹은 평범한 백성들이라는 데 있다. 강릉태수인 순정공도, 힘세고 날렵한 무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일들을 동네 백성들은 일도 아니라는 듯 다가와서 해결해주었다. 동해 용도 사랑한 아름다운 물의 신 수로부인을 지키고 구출한 것은 힘없는 노인, 백성이었던 것이다. 결국, 수로부인은 백성들이 함께 사랑하고 지키던 아름다운 존재였음을 알 수 있다. 지금, 우리에게 거침없이 지켜주어야 할 아름다운 존재가 있는가 뒤돌아본다. 벌써부터 대선을 염두에 둔 사전 작업들이 한창이다. 누가 누구를 지키는 것인가. 수줍은 철쭉꽃의 고백이 그래서 더 마음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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