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목요세평] '장애 억압'이란 말 들어보셨나요?

마선옥 한국장애경제인협회 충북지회장·꿈제작소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1.05.05 15:32
  • 기자명 By. 충청신문
마선옥 한국장애경제인협회 충북지회장·꿈 제작소 대표
마선옥 한국장애경제인협회 충북지회장·꿈 제작소 대표

생활하다 보면 ‘장애 차별’이란 말을 곧잘 듣게 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모두 같은 사람인데 왜 양자를 차별해서 대우하는가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말이다. 대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장애인이 온당한 권리를 부여받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할 때 ‘장애 차별’이란 말을 사용한다. 차별 행위는 확연히 표시가 나는 행위로 구별이 용이하다. 그래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 대한민국은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장애인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데 차별받지 않을 당당한 권리를 확인받았다.

‘장애 차별’은 대등성의 문제로 부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여지가 크다. 하지만 ‘장애 억압(Disability Oppression)’이란 개념은 ‘장애 차별’보다 그 골이 깊고 드러나지 않는 문제로 쉽사리 해결되기 어렵다는 제한성을 갖고 있다. ‘장애 억압’은 오랜 세월 당연하다고 여기다 보니 누가 왜 억압하는지 알 수조차 없는 일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일반적으로 저항할 수도 없고, 대개의 사람은 문제라고 인식조차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 ‘장애 억압’이다. ‘장애 억압’은 정치, 사회, 문화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억압하는 이를 찾기 어렵고, 해결책을 찾기도 어렵다. ‘장애 억압’은 개인이 특정 집단 또는 사회에 속해 있으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모든 지위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장갑이나 운동화 등을 제조해 판매하는 기업이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짝으로만 만들어 판매하는 것은 엄연한 ‘장애 억압’이다. 피해자는 있는데 정확한 가해자가 누구인지 지목할 수 없어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개선을 요구하기도 힘든 상황이다. 오랜 관행이 모든 문제의식을 덮고 있다.

‘장애 차별’은 법의 제정과 정비를 통해 해결할 수 있지만 ‘장애 억압’은 대단히 포괄적이고 대단히 오랜 시간에 걸쳐 관행으로 굳어진 상태라는 점 때문에 개선이 어렵다는 특성을 갖는다. 장애 억압의 문화는 부지불식 간에 생활 속으로 스며들어 그것이 존재하는지를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억압을 받는 장애인은 물론 억압을 하는 가해자조차 억압이라고 판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더 무섭고, 해결이 더 어려운 문제이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는데 문제의식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장애 차별’은 관련 법의 제정을 통해 상당 부분 극복해나가고 있지만, ‘장애 억압’은 사회구성원 전체의 관련 의식이 성장해야 차츰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이다. 그래서 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고, 단번에 해결할 수 없다는 특성을 갖는다. ‘장애 차별’은 물론 ‘장애 억압’이 완벽하게 사라져야 장애인에 대한 편견의 진정한 소멸이라고 할 수 있다. 장애인은 그저 불편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불편은 사회가 다수인 비장애인에 맞춰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고 억압받는다. 이러한 차별과 억압은 성숙한 사회를 만드는 데 절대적 방해 요소이다.

‘장애 억압’은 참으로 슬픈 말이다. 억압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언제부터 억압이 이루어졌는지 알 수 없으니 저항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차별의 문제를 극복하고 나면 우린 다시 억압의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나 현재 우리는 차별조차도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는 온갖 차별과 억압이 존재하고 있다. 차별과 억압 속에 피해자는 일일이 저항하지 못하고 피해를 감수하고 있다. 일일이 저항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어쩌면 ‘억압’의 한 갈래일 수 있다.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러니가 억압이다. 차별을 넘어서 억압까지 벗어던져야 진정한 해방에 이르게 된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