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국가와 민족 간 평화의 길을 만들 수 있을까.
국가 간 세력균형을 이뤄 질서를 유지하자는 현실주의적 세계관이 그중 하나다. 쉽게 말해 힘으로 힘을 견제하자는 원리로, 원초적인 인간 본성을 구체화한 이론이고. 이와 함께 국경을 넘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교류가 일종의 국제질서를 유지하게 한다는 자유주의 이론도 등장하고 있다. 경제·문화·사회 등 민간분야의 교류가 일종의 레짐(규범)을 형성해 국제질서가 조화롭게 운영된다는 시각이다.
이들 이론 모두 일정 시각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현실에 적용하면 설명하기 모호한 부분이 너무나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평화의 주체는 인간이라는 점이다. 또 인간의 노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지원해 주는 주체는 국가이다. 따라서 국제교류를 통한 평화번영의 길에는 개개인의 역량과 정부의 노력이 함께 해야만 더 큰 시너지 효과가 창출된다고 본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보태면, 이 노력의 핵심은 우리가 인류 공동체라는 연결의 고리를 끊임없이 찾는 것이다.
그것은 때론 ‘백제문화’와 같은 역사가 될 수도 있고, 민주주의나 인류애, 자유, 인권 등의 가치가 될 수도 있다. 이 연결 고리의 다른 이름은 신뢰이다.
여전히 정치·경제·사회·문화 전 분야에 걸쳐 동아시아 국제질서가 요동치고 있다. 큰 파도가 칠 때 배를 지켜주는 것은 끈끈히 이어진 동아줄이다. 이 시간 우리의 작은 교류는 튼튼한 동아줄 일부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지난 칼럼에서도 언급했듯 17년간 일본에서 생활하면서 주로 중국과 베트남을 오가는 등 이방인의 삶을 살아왔다.
낯선 이국에서의 생활은 ‘타인으로서의 삶’이 얼마나 위태롭고 고단한 일인지 몸으로 깨닫게 해준다. 삶이 외롭고 고단한 탓인지 ‘공동체’에 대한 사유가 깊어졌다. 그 사유의 끝에는 항상 국가라는 틀을 넘는 ‘동아시아의 가치와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어떤 고리가 그들과 우리 사이의 이질감을 벗겨줄 것인지 늘 고민해 왔다.
이러한 고민 속에 ‘백제문화’가 일본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상당한 매력을 느끼게 됐다. 1500년 전 아득한 시간, 백제문화가 일본인의 정신세계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그 흔적이 현대 일본인의 삶 구석구석에 남아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 백제문화를 공유하는 관점에서 한국과 일본은 하나의 대지에 뿌리내린 두 개의 나무와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이 사실을 깨달을 때 더는 타인이나 이방인의 존재가 아니었다.
이때부터 ‘내가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해 일본인들에게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됐다. 좀 더 강하게 표현하면, ‘백제 알리기’가 ‘나의 소임’이 되는 순간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백제문화 알리기에 힘쓰는 가운데 충청남도에 임용되었다. 사적인 노력이 한순간 공적 차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성공의 근본적 동력은 17년간 일본 생활을 하며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였다.
개인 차원에서 서로 관계를 맺는 게 사소한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이러한 ‘인적 네트워크’가 일본뿐 아니라 중국과 베트남 등 동아시아를 잇는 원동력이 되었다.
민간외교를 하는 이유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풀기 어려운 일의 경우 개인 차원에서 자유롭게 접근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신뢰이며, 건강하게 ‘인적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구성주의적 관점에서 이러한 인간관계의 교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 국익에 따라 관계를 맺고 끊는 현실주의적 국제 관계의 협소한 틀을 뛰어넘는 가능성의 지점이다. 또 지나치게 이상적인 자유주의적 시각의 한계를 넘어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상호 반응에 따라 세계를 구성해 갈 수 있는 포용력의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일상생활에서 맺어진 인간관계의 그물망은 국가 또는 세계에 대해 공명하고 대응하는 가능성의 관계망이다.
국제교류의 핵심은 평화의 주체인 인간 개개인의 ‘개별’과 제각기 사회공동체가 지닌 ‘보편’과의 합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