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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속으로] 기다림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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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6.21 15:42
  • 기자명 By. 충청신문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강희진 음성예총 회장
6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집집마다 덩굴장미가 여름으로 가는 길목을 환하게 비춰 준다. 여기저기 장미꽃 소식이 들려온다. 장미꽃 한 다발의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꽃망울이 처음 맺힌 것은 4월 중순이었다. 그동안도 사연이 많았다. 가뭄으로 떨어지는가 하면 아파트 단지 내의 장미꽃 가지가 비바람에 꺾이는 것도 보았다. 그리고는 5월 초부터 피기 시작했다. 올해는 절기가 딱 맞는지 두 달 가까이 피는 꽃, 덩굴장미가 코로나 증후군에 시달린 우리를 달래주고 있다.

코로나 사태와 함께 우리는 모두 기다림에 익숙해졌다. 누군가는 하늘길 열리기를 기다렸고, 누군가는 집합금지 명령이 해제되어 그리운 사람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했다.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코로나 사태가 백신 접종에 따라 집단면역의 희망을 주고 있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이 1년 9개월 동안 기다려온 끝이다.

학위를 받으면서 친해진 네 명의 친구가 있다. 오월 어느 날 저녁 그중 한 명이 뜻밖에 연락해 왔다. 김 박사님 아들이 하늘나라로 갔다면서 병원으로 가는 길이라 했다. 그분 아들은 현재 군 복무 중이었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10년을 기다려서 낳은 귀한 아들이 입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검으로 돌아온 것이다. 장미가 한창 피기 시작할 즈음에 들은 청천벽력 소식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진다.

입대 전 한 달을 엄마의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 식사를 준비했단다. 어느 날은 카레를 그리고 어느 날은 스파게티를 만들면서 오붓한 시간을 보냈겠지. 그렇게 입대한 지 겨우 스무날 날벼락 같은 소식에 나까지 넋이 나갔다. 아직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 나이에 그럴 리가 없어. 한참을 넋 놓고 있다가 부랴부랴 오송역으로 향했다. 11시 출발 경부선을 타고 진주로 내려갔더니 영정사진 속에서 그 녀석이 거짓말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지난 2019년 네 가족이 모여서 베트남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녀석은 명랑하면서도 반듯한 성품이었다. 여행 도중 누군가 불편한 기색이라도 보이면 즉각 달려가서 도와주었다. 명랑하며 세심하고 일행과도 잘 어울렸다. 아들이 없는 나는 특별히 엄마를 챙기고 보호하는 게 무척 부러웠다. 여행 마지막 날에는 모든 엄마들 선물로 귀걸이까지 챙겨주던 녀석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 두서가 잡히지 않았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심정이 그대로 전해져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나까지 힘들었다. 장례가 끝났겠구나, 삼우제가 지나갔겠구나! 마음속으로만 헤아리고 있다가 카톡으로 안부를 전했다. “믿어지지 않아 말짱하다가 어제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어요. 내일은 울 아들 만나러 현충원 갑니다”하는 답장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울먹였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는 엄마의 심정이 백번 이해되고 남는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무리 소식을 전해도 답이 없을 아들, 기다려도 오지 않을 아이를 기다리는 김 박사님의 심정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마다 목이 멘다. 이제 갓 스무 살을 넘었다. 꽃다운 아들을 보낸 친구 김 박사님은 앞으로 어떻게 견뎌야 하나. 10년을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얻은 외아들이 이제는 아무리 기다려도 소식이 없는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기다림이 아름다운 것은 돌아올 거라는 기약 때문인데 더는 희망이 없으니 어찌 살려나? 오늘따라 담장을 타고 올라가는 붉은 덩굴장미가 더욱 아름다워 슬프다. 6월의 꽃 장미가 목타는 그리움의 꽃으로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여행 도중 이어폰을 꽂은 채 엄마를 차도 안쪽으로 밀며 걸어가던 그 녀석의 뒷모습이 자꾸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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