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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극장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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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7.06 16:13
  • 기자명 By. 충청신문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필 목원대 교수·테너

서양 예술을 논할 때 고대 그리스 원형극장을 빼놓을 수 없다. 산골짜기 하단에 있는 야외극장은 마이크 없이도 불어 내려오는 골짜기 바람으로 음성이 확장되었던 공간이었다. 우리가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 시대물 영화를 보면 자주 접할 수 있는 것이 말발굽형 극장이다. 긴 반원으로 무대를 보고 말발굽처럼 둘러 있는 형태로, 1층을 제외한 각 층은 갤러리석이라고도 하는데, 스포츠 경기장에 둥그렇게 켜켜이 쌓아 올라가는 상층부 좌석을 생각하면 되겠다. 평평한 1층은 입석으로 지금의 콘서트장 스탠딩 포스트에 해당한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극장이 공연을 보는 용도 외에도 정치적인 장소로 빈번히 이용되었다. 정치인들은 낮에 의회나 궁정에서 서로 잡아먹을 듯 으르렁대다가도, 저녁에 오페라 극장에서 한층 가라앉은 상태로 대화를 하는 걸 즐겼다. 저녁 식사 후 훌륭한 음악으로 마음이 한층 너그러워졌으니 오가는 말이 낮보다는 부드러울 테고, 뭔가를 협상하기에 공연 중간 인터미션이라 부르는 휴식 시간만큼 적당한 타이밍도 없었다. 1부 공연이 훌륭했다면 공연 이야기로 화두를 꺼내 자연스럽게 대화의 물꼬를 트고, 공연이 시원찮았으면 2부 관람을 포기한 채 극장 안 바(Bar)에서 간단한 음주로 논의를 마무리 지었다.

또 하나의 용도는 바로 사교였다. 사교모임으로 주최되는 파티 외에는, 자신의 용모와 패션을 드러내기에 저명인사들과 패셔니스타들이 모이는 오페라 극장만 한 데가 없었다. 극장의 둥근 갤러리석에서 서로 마주 보며 사교와 정치적 모임을 하던 사람들은 차츰 좀 더 은밀하고 개인적인 만남을 원했다. 이에 당시 작곡가이던 베네데토 페라리(B. Ferrari)의 아이디어로 기존의 갤러리석에 칸막이와 별도의 커튼이나 출입문을 달아 개별 칸으로 구분 짓는 박스석이 탄생했다. 이렇게 박스석은 공연 관람보다는 사교모임의 방으로 활용되었다. 그래서 르누아르(P. A. Renoir)의 명화 ‘특별석(La Loge)’을 보면, 귀부인인지 화류계의 여인인지 모를 여인과 오페라 글래스를 통해 다른 곳을(혹은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 방향이 서로 다르다.

그래서 과거의 공연장은 지금과는 판이했는데, 공연 중간에 연주자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내는 만큼 야유도 근거리로 뭔가를 투척하며(주로 잘 익은 오렌지나 토마토였다) 퍼부었다, 또 객석도 화려한 샹들리에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는데, 샹들리에당 수백 개의 초를 껐다 켰다 할 시간도, 이유도 딱히 없어서 지금과 달리 객석이 무대만큼이나 밝았다. 객석이 어두워 상대를 잘 못 알아보게 되어 귀하신 귀족의 즉석만남이라도 어그러질까 싶어 객석은 마냥 찬란했다.

19세기 후반, 극과 음악의 완전한 합일을 주장하던 리하르트 바그너의(R. Wagner) 등장으로 극장은 대변혁을 이룬다. 좌석 위치마다 보이는 장면이 달라지는 말발굽형 극장보다는, 비교적 고른 시야각을 제공하는 현대와 같은 부채꼴 모양의 극장 좌석 구조를 택했다. 게다가 단위면적당 좌석 수도 더 많았기에 일거양득이었다. 꾸벅꾸벅 졸던 귀족들이 공연 중간에 나가던 꼴이 보기 싫었던 바그너는 아예 중앙 객석 통로도 없앴다. 한번 들어오면 공연 종료까지는 나갈 일이 없게 만든 것이다. 지금 소방법으로는 꿈도 못 꿀 일이다.

자신의 작품이 온전히 집중된 상태로 감상하길 원했던 바그너는 공연이 시작하면 객석 조명을 전부 껐다. 그것도 모자라 시야를 가리는 오케스트라 반주가 거슬리고 크다고 느껴서 피트(Pit)를 만들어 주 무대 아래로 오케스트라를 넣고 천으로 지붕까지 가려버렸다. 이렇게 악기 주자들이 반지하라고 자조하는 모양새를 처음 만든 사람이 바그너다.

악장이나 공연 중간에 박수나 앙코르를 싫어해 온전히 공연에만 집중하고팠던 전설적인 지휘자 토스카니니( A.Toscanini)는 스칼라 극장 공연 때 유명 가수의 앙코르를 집요하게 요구하던 관객과 언쟁까지 벌이고는 2막 종료 후 극장을 나가서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결국 푸르트 벵글러(W. Furtwängler)는 악장 사이사이의 공백도 음악의 일부로 간주하고 박수를 금한다. 현대의 공연장에서 악장 사이의 박수를 삼가달라는 멘트가 나오게 되는 유래다.

코로나19의 터널이 끝이 보이질 않는다. 관객과 박수가 가득하던 공연장의 기억이 희미해져만 간다. 공연장의 온전한 모습을 찾는 날은 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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