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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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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7.22 16:10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최성수 대전서구문화원 사무국장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이문열의 중편소설이다. 1987년 이상문학상을 수상하여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훗날 영화로 제작되어 더욱 유명세를 탄 작품이다. 소설의 배경은 시골의 한 초등학교지만 그 메시지는 제법 의미심장했다. 일그러진 권력의 허구성과 부조리한 권력의 실상을 알면서도 현실에 순응하는 소시민적 근성이 적나라하게 다뤄졌기 때문이다. 주요 줄거리는 이렇다.

40대의 학원 강사 한병태는 친구로부터 국민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상갓집으로 가는 기차에서 그는 30년 전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시골학교로 전학 간 그는 담임의 두터운 신임을 등에 업고 급우들에게 절대적 권력을 휘두르는 반장 엄석대를 만난다. 전학 후 불편한 관계였던 그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절대 권력자에게 대항해 보지만 돌아오는 건 친구들의 놀림감과 따돌림뿐이었다. 그가 최후의 수단으로 생각했던 공부마저 뒤처지자 결국 석대의 그늘로 들어가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진다. 새 학년이 되어서야 부임한 정의로운 젊은 선생에 의해 가려졌던 영웅의 일그러진 진실이 드러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절대 권력은 학교에 불을 지르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뜬금없이 일그러진 영웅을 들추는 이유는 간단하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여야를 막론하고 적지 않은 잠룡들이 난세의 영웅을 꿈꾸며 용틀임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들이 저마다 그럴듯한 출사표를 던지며 민심을 잡으려 하지만 검증이라는 저울대에 달리는 순간부터 국민들에 의해 누가 알곡이고 누가 쭉정이인지 가려질 것이다. 누군가는 나름 존경받은 과거의 삶마저 부정당하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남겨질 수 있다. 돌이켜보면 우리 대선 역사에서도 한 때 ‘따 논 당상’처럼 추앙받다가 한순간에 일그러진 영웅으로 추락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중 한 사람이 유엔사무총장 출신 반기문이다. 그는 사무총장 임기 후 자국 선거 출마를 금기시하는 UN 방침을 어겨가면서까지 의욕적으로 대선 행보를 하였으나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는 칭송을 받으며 대선 후보로 화려하게 등장했지만 지하철 탑승조차 어려워하는 반 서민적 모습, ‘돈이 없어 정치하기 어렵다’는 돌출 발언 등으로 논란거리를 제공했다. 급기야 현안에 대해 두리뭉실한 답변으로 피해 나가자 ‘기름장어’라는 오명을 남긴 채 단기 하차하고 말았다. 그가 쌓아온 명성도 함께 무너졌다.

그 이전에도 혜성처럼 등장한 이가 있었다. 의사이자 사업가이면서도 대중적 인기를 발판으로 급부상한 안철수다. 그는 새로운 정치라는 메시지를 내세워 한때 여론조사 1위까지 올랐으나 ‘양보’하고 차기를 선택했다. 5년 후 19대 대선에 출마했지만 ‘MB아바타’ ‘간철수’ 등 오명만 남기며 고배를 마셨다. 그가 국민들에게 제시했던 새 정치는 구호로만 남았고, 이후 여야를 넘나드는 정치 행보는 구 정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가 이번 대선에도 나설 지는 두고 볼 일이나 처음 영웅적 모습에 비해 적잖이 일그러졌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비단 이들 뿐이었겠는가. 행정전문가로 명성을 얻은 고건도 있었고,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의 기업인 문국현도 그랬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느 날 갑자기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다가 검증 단계를 거치며 추락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가. 정권 말 소란하고 어지러운 정치 행태를 겪으며 난세의 영웅을 기다리기 때문 아닐까. 하여 ‘이 사람인가’ 했다가 ‘아닌가 봐’ 하는 현상이 되풀이된다. 결국은 어느 정도 흠이 있더라도 봐 줄만한 정도의 인물을 택하게 된다. 최선을 찾다가 차선을 선택한다는 의미다. 물론 대통령이 된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는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처럼 오히려 더 비참하게 일그러진 영웅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번 대선국면에서도 벌써부터 그런 조짐이 일고 있다. 현재 여론조사 상위권에 있는 잠룡들이 크고 작은 구설수에 오르내린다. 검증이라는 구실로 네거티브가 난무한다. 이런 이들이 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갈 수 있을까 염려될 정도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나 정책 보다는 사생활이나 과거 전력이 뉴스의 중심이다. 이들이 온전하게 대선레이스를 완주할까 싶을 정도다. 우리는 언제 쯤 온전한 영웅을 볼 수 있을까 회의감이 드는 건 필자만이 아니리라. 소설 속 화자 한병태의 회상처럼 ‘어쩌면 세상은 30년 전 5학년 2반과 다를 바 없고, 여전히 또 다른 엄석대가 영웅으로 군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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