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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모집 그리고 모시기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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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7.25 16:0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이상엽 건국대학교 융합인재학과 교수

1997년 피터 드러커는 30년 후, 그러니까 2027년에 대학 캠퍼스는 역사적 유물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터넷 보급과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으로 전통적 교육 모습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는 것이다. 변화의 방향은 맞지만 다소 급진적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대학 규모가 확대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수 가 급증한 건 대학교육의 수요자인 20대 인구의 증가에 연유한 것이다. 출생아가 급감하기 시작한 2002년생이 대학에 진학한 2021년에 대학가에 강한 충격파가 왔다.

일본의 경우 대학 진학 인구가 1992년 205만 명을 정점을 찍은 후 2004년에 141만 명까지 감소하였다. 지방사립대들이 편법으로 정원을 충원하거나, 파산·폐교되는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 정원 미달이 전체 정원의 20∼30%에 다다랐다. 우리 대학들이 향후 5년간 겪어야 할 고통의 모습이다.

현재 우리 대학가는 어떤 모습일까? 디지털 혁신공유대학 경쟁도 끝났다.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도 마친 상태다. 모든 에너지를 9월 중순에 접수되는 2022년도 수시입시에 올인하고 있다. 5월부터 입시전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수도권의 30위 권 이내의 대학들과 과기특성화대학들은 얼마나 좋은 학생을 ‘선발’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돼 있다. 반면 지방대학 중 상위권인 거점국립대의 입시전략은 ‘선발’이 아닌 ‘모집’으로, 중위권 대학은 학생 ‘모시기’로 전환되었다. 수시입시에서 보다 많은 인원을 ‘모시기’ 위해 학생생활기록부에서 출석 미반영, 면접 폐지, 자기소개서 제출 폐지 등 입시 제도를 간소화하는 대학이 많아졌다. 지역거점국립대들은 대학명에 ‘국립’을 덧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역에 있는 호텔을 ‘서울호텔’, ‘강남호텔’이라 개명한들 과연 효과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몸부림에 가슴이 시리다.

2021년 일반대의 평균 등록률 현황을 보면, 수도권의 경우 2020년 입시 대비 0.7% 하락한 반면 경남 10.4%, 전북 10.3%, 강원 10.1%로 피해가 컸다, 전문대의 경우 서울은 1.2%에 불과했으나 경기는 14.5%, 인천 6.7% 하락으로, 입시 한파가 경기, 인천에도 상륙했다. 충북 18.4%, 제주 15.4%, 세종 13.9%, 부산 10.7% 하락으로, 전문대의 위기가 심각하다. 한파를 겪은 지역대학들이 2022년도 입시를 앞두고 불안에 휩싸여 있다.

지역인재가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것은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19세에 수도권 대학으로의 진입, 21세에 서울권 대학으로 편입, 23세에 서울권 취업. 서울권 취업이 여의치 않으면 대학원 진학을 생각한다. 대학원은 학력 업그레이드용으로, 취업 지연에 따른 공백기 대처용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대학이 몰락해 가고 있는 마당에 교수가 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예전 같지 않다.

지역인재가 유출되다 보니 방학 중에 스터디그룹 구성도 쉽지 않다. 지역대학이 쇠락해 가면 지역경제도 위축되어 결국 지역소멸로 이어진다. 악순환이 계속된다. 지역대학의 쇠락을 막는 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2027쯤엔 입학자원의 한파에 대학이 적응할 수 있다. 교육부에서는 입학정원 일부 모집을 유보하도록 허용하는 '모집유보정원제'도 시행하기로 했다. 감축 실적에 반영할 때 모집 유보 후 되돌릴 경우의 요건을 지역대학에 한해 전향적 자세를 견지할 필요가 있다.

거점국립대와 지역거점국립대의 통합을 추진하고, 그전에라도 연합대학 형태로의 진행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사립대학들이 자발적으로 유연한 공유 지배구조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2017년 10월 정부는 혁신도시 조성 및 발전에 관한 특별법 개정을 통해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한 공공기관에서 신규 채용을 할 때 해당 지역에 소재한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한 지역인재를 30% 이상 채용하도록 규정하였다. 2019년 7월에는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혁신도시법을 제정하기 이전에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이전한 지역까지 소급하여 지역인재를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거점국립대 등 특정대학 학생들의 합격률이 매우 높은 상태라 지역거점국립대, 지방사립대 학생들 간의 사회적 형평성 문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5명 미만으로 쪼개기 채용을 한다거나 경력직 채용조건을 내걸어 이를 피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 한다. 공공기관과 지역대학이 협력하여 계약학과 대학원을 만들어 공공기관에서 원하는 맞춤형 교육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

2000학년도 학령인구 77만6000명일 때 정원 외 대학별 선발 비율이 5%였는데, 45만 명이 무너져 가고 있는 지금 13%인 상태다. 고른기회전형으로 정원 내에서 동일 전형으로 추가 선발하고 있다. 단계적으로 학령인구 추계에 맞춰 수도권부터 시작해서 전국 대학으로 정원 외 선발 비율을 줄여나가야 한다.

특성화고의 설립 취지가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대학 진학자와 진학 희망자의 비율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재직자 전형 외에 지역대학에 한해 특성화고 학생들의 진학을 용이하게 해줄 필요가 있다. 현장실습 시 해당 업체에 대한 세제 혜택과 함께 시·도에서 현장실습비를 지원해 주도록 해야 한다.

역사 속에서 대학들은 변화의 흐름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기도 하고, 때론 적응하면서 살아남아 왔다. 앞으로 5년 이내에 대학의 생존이 결판난다.

‘사랑의 불시착’ 연속극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바람은 지나가기 위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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