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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여름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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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7.27 14:59
  • 기자명 By. 충청신문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아이들과 생활하는 유치원 앞마당에 해를 품은 여름꽃이 만발이다. 따스한 봄날 담장 아래 심은 해바라기 씨앗이 자라 어느새 초록 잎 사이로 반짝반짝 얼굴을 내밀고, 지난해 떨어졌던 나팔꽃 씨앗도 새싹으로 돋아나 줄기를 만들고 창문을 타올라 교실 너머 안을 들여다본다. 백일 동안 붉게 핀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백일홍'은 여름을 대표하는 꽃답게 올해도 어김없이 울긋불긋 흐드러지게 피었다.

멀리 창밖 들녘엔 온갖 여름 곡식들이 햇살의 기운을 머금으며 자라고 있다. 어느 농부의 논에는 봄부터 여름내 심고 가꾸고 길렀을 벼들이 푸르게 자라 거대한 초원을 연상케 한다. 밭에도 작물은 자라 하늘 향해 높이 솟은 옥수수가 알알이 영글어 튼실한 것이 조만간 누군가의 일용한 간식거리가 될 것 같다. 그야말로 눈부시게 화창한 여름의 색이 도드라지는 성장의 계절이다.

바야흐로 사람들에게는 휴가의 계절이 돌아왔다. 본격적인 무더위의 시작으로 누구나 바다로 계곡으로 휴가계획을 세우는 여름이다. 그러나 올해는 휴가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깊은 고민에 빠졌다. 여전히 코로나에 델타 변이 바이러스 재확산까지 겹쳤으니 마스크를 던져 버리고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날 수도 없고 결국 집으로의 휴가를 결정하고 휴식으로 마음을 정해본다.

당(唐)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는 그의 시 ‘소서(消暑)’에서 여름날 더위를 이겨내는 방법을 읊었다. 집 안에 머물며 마음으로 주변을 돌아보면 생각보다 집 안은 여름 더위를 견디기에 좋은 장소라는 것이다. 그 뒷받침으로는 집 안을 비우고 온갖 잡다한 마음의 상념을 지워야 함을 조건으로 했다. 결국 ‘더위’라는 것도 저마다 마음먹기에 따른 것이란다. 쓸데없는 일에 과욕하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비우는 것이야말로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라는 것에 공감이 많이 갔다.

지난 이맘때에는 코로나로 인해 휴가를 떠날 수 없어 여행비를 털어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를 구매했다. 총 스무 권으로 엮어져 있고 두께도 꽤 있어 읽기에 부담이 있었지만 완독해 보기로 했다. 내용이야 어느 해인가 대하드라마로 텔레비전 방송에서 방영되어 열렬한 시청자로서 모두 알고 있으니 이번에는 한 줄 한 줄 문장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읽으며 마음을 흔드는 문장이 나오면 줄을 긋고 노트에 필사하면서 그해 여름이 물러가기 전 드디어 완독했다. 온 가족이 여름마다 떠나던 바다 풍경의 즐거웠던 추억 못지않게 책 스무 권을 내 것으로 만든 것에 흐뭇했고 더위도 가뿐히 이겨냈다.

올해도 작년과 별반 다를 바 없는 여름, 무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위를 피해 집 밖으로의 화려한 여름휴가는 내년을 기약해야 할 것 같다. 여전히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코로나에 꼼짝없이 발목이 잡혔으니 어쩌겠는가.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작년처럼 집 안에서 즐겁게 무더위를 이겨내기로 마음먹고 실행에 옮겼다.

가장 먼저 채운 만큼 비워보기로 했다. 집안 곳곳에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과 읽고 난 오래된 책들을 정리했으며 한창 시절의 허리 잘록한 옷들도 의류 수거함에 넣었다. 치우고 난 후에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는 걸 보면 그만큼 나의 소유욕으로 채워진 물건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휴대폰에 저장되어있는 전화번호도 정리한다. 갖은 만남에 연연하기보다는 최소한의 연락처로 깊은 인연을 유지하며 나만의 속도로 가벼이 사는 것도 꽤 괜찮을 것 같다. 아끼는 물건 몇 개만으로 행복지수를 올리고 나를 위해 울어줄 단 한 사람만으로도 행복한 삶일 수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 올해는 그 마음을 단단히 하는 것으로 이 여름을 보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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