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선(線)

이종구 수필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1.08.18 16:1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이종구 수필가
이종구 수필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리 땅에는 지도에서나 볼 수 있는 선(線)이 그어졌다. 이른바 ‘38선’으로 남과 북을 나누는 선이 되어 6·25 전쟁으로 약간의 변화(휴전선)가 있었지만, 여전히 남·북으로 나뉘어 76년을 지내오고 있다.

고등학교 때 동해안으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해안가를 달리던 버스가 갑자기 멈추었고, “여기가 38선이다. 잠시 내려서 살펴보자”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우리는 버스에서 내렸고, 그리고는 땅바닥에 무언가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흰색 페인트로 칠해진 나무 표지판에 ‘38선’이라는 검은색 글씨를 보는 것으로 만족했었다. 38선은 지도에만 있는 선이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선을 만난다. 집 앞 도로만 나가도 노란색과 흰색의 도로 차선을, 인도에서는 보이지 않는 선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으로 걸으며, 물건을 정리할 때는 왠지 줄을 맞추어야 마음이 개운하다. 요즘은 covid19로 2m의 사회적 거리두기 선이 있다.

그런가 하면 마음과 생각으로 지켜야 할 선도 많다. 도덕심과 규율과 체면 때문에 참고, 힘이 없어 참고, 용기가 없어 참는 마음의 선이 있다. 그래서 가끔은 nobless oblige라는 말을 떠 올려 보기도 한다.

선은 무언(無言)의 명령이기도 하다. ‘선을 넘었다’라는 말을 한다.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했다는 말이다. 출발선은 출발하라고, 정지선은 정지하라는 명령이 들어있고 도로 중앙의 노란 선은 침범하지 말라는 명령이 들어있다. 이런 명령을 어기면 제재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선의 명령을 잘 듣고 지키면 명랑한 사회가 되고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게 된다. 결국, 우리 앞에 있는 모든 선은 그 선을 넘지 말거나 지키라는 것이며 지켜질 때 얼굴 붉힐 일이 없다는 의미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가에서는 벌써 부터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각 당에서는 후보자들을 선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선거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뉴스에서 전해지는 말이 귀를 찌른다. “금도를 넘었다”라는 말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금도(襟度 : 남을 용납할 줄 아는 아량)”으로 나오는데 “금도(禁道)”는 나오지 않는다. 어쨌든 말이 지나쳤다는 의미이다. 말이 지켜져야 할 선을 넘었다는 표현이다. 금도를 넘으면 감정이 쌓이고 감정이 쌓이면 골이 깊어진다. 상대방의 장점과 자신의 과오를 인정할 줄 아는 아량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차별적으로 던져지는 matador는 상호 간에 모두 손해가 된다는 것을 왜 생각하지 않을까?

금도(襟度)든 금도(禁道)든 서로의 지켜야 할 선을 지킬 때, 국민은 후보자를 바르게 보고 선택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비단 정치인들뿐이랴? 우리 보통 사람들도 친구 관계에서, 직장의 상하 관계에서, 가족 간, 부부간에 할 말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말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다만 아량이 부족하고, 감정에 치우치다 보니 툭 내뱉는 말이 자충수가 되어 서로 간에 마음 상한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 내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는 속담을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음에 후회를 해 본다.

도로 차선 중앙에 노란 중앙선이 있듯이 인간관계에도 금도가 있어 이를 지켜 갈등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에서 홍보·인간관계 전문가로 활동 중인 리웨이원은 그의 저서 『인생의 가장 중요한 7인을 만나라』에서 “세상 모든 일에는 적절한 선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하지 못하는지, 또 무엇을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 적절한 선을 지키는 법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꺾이지 않는 covid19의 위세에 거리두기 4단계가 계속되고 있다. 예년보다 수은주를 높인 더위가 기승이다. 무엇하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주는 것 없이 stress는 쌓여만 간다. 그래도 할 말, 안 할 말 가려서 가족과 친지들의 마음 상하는 일 없게 이 여름을 넘겼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