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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여성들

김경희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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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08.24 14:50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경희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김경희 대전시 성인지정책담당관

통계청에서는 매년 ‘한국의 사회동향’을 발간한다. 통계청에서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한국여성정책개발원에서 ‘여성통계연보’ 등 성인지통계를 발표하지만, 현재의 통계집으로 성별 특성과 현황을 보여주기에는 한계가 있다.

1970년대 양성평등이 세계 각국의 주요 의제로 채택되기 시작했을 때, 성별통계가 제대로 작성되어 있지 않아서 양성평등 정책 수립에 곤란을 겪었다. 1975년 UN 제1차 세계여성대회에서 ‘성인지통계’의 중요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그 이후 체계적인 자료와 통계를 축적하며 지표개발을 통해 여성들의 지위와 삶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995년 UN 제4차 세계여성대회 이후 여성관련 정책의 기획 및 평가를 위한 성별분리자료 구축을 적극적인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으며, 모든 형태의 일과 고용에 대한 포괄적인 지식, 출산과 모성보호, 모든 형태의 폭력, 장애 등의 통계개발을 강조해 오고 있다.

데이터는 권력이다. 통계는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문제를 부각시켜 정책대안의 우선순위를 고민하게 한다. 데이터가 없으면 명백히 존재하는 현실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다. 치안, 산재, 채용, 출산 영역 등에서 지워진 여성관련 통계들은 여성들의 삶을 무시하거나 애써 외면해 온 원인이자 결과이다. 사회적 표준이 만들어질 때마다 여성들은 가려지고, 지워지고, 끝내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었다.

저출생, 고령화시대에 일생활 균형은 성평등 실현을 위한 시대적 과제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 권장 등으로 익숙하게 진행되어 오던 일상이 달라졌다. 한산한 공항과 터미널, 텅 빈 시장, 폐업하는 가게들, 각종 사회 동향지표들은 곤두박질치고, 집콕하는 가족들 틈바구니에서 여성들은 아우성이다.

개인의 삶의 질을 고민할 때 주 40시간 이상 일하면 과로사한다고들 한다. 그 말을 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로 생산노동에 참여하는 남성들을 떠올린다. 이중고에 시달리는 취업여성은 말할 것도 없이, 주부들도 이미 집안일과 육아포함 주 40시간 이상 일하고 있어서 죽을 것 같은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항상 일주일에 40시간 넘게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여성의 무급노동은 사라져 버린다.

일하지 않는 여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일을 하고도 급여를 받지 못하는 여자가 존재할 뿐이다. 전 세계적으로 무급노동의 75%를 담당하고 있는 여성들의 존재는 기억되지 않는다.

2017년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라이언 고슬링은 파트너인 네바 멘데스의 무급노동에 감사를 표하면서 그녀의 희생이 없었다면 자신이 상을 받지 못했을 거라고 말함으로써 여성의 무급노동을 인정하는 특별한 남성이 되었다.

국가의 경제규모를 가늠하는 GDP에는 집안일이나 돌봄이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여성의 노동가치나 생산성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수많은 기업과 조직사회에서 시행 중인 성과중심의 업무평가제는 ‘돌볼대상이 없는 직원’에게 더 유리하다. 자녀가 있는 맞벌이 여성은 일터에서 출발선이 다른 경주를 하는 셈이다.

개별차원의 통계를 살펴볼 때 남녀를 분리하여 조사하고 발표한 통계가 아니면 남녀의 다른 상황은 전혀 파악되지 않는다. 실제로 남녀가 처한 개인적, 사회적 상황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통계를 비교함으로써 남녀의 불평등한 상황을 점검하기는 어렵다.

각종 통계에서 보이지 않는 여성들을 빛으로 끌어내야 한다. 통계를 통해 남녀의 실제 상황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정책입안자들의 정책대상에 대한 이해를 촉진함으로써 잘못된 성역할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삶을 고려한 성인지 통계를 생산하고, 정책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남녀 모두의 삶의 질이 높아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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