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95%를 위한 나라

마선옥 한국장애경제인협회 충북지회장·꿈제작소 대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1.09.01 14:40
  • 기자명 By. 충청신문
마선옥 한국장애경제인협회 충북지회장·꿈제작소 대표
마선옥 한국장애경제인협회 충북지회장·꿈제작소 대표

사람의 의지대로 되는 일이 있고, 안 되는 일도 있다. 가령 내가 대한민국에 태어나기 위해 노력해서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기 위해 어떤 작용을 한 적이 없지만, 여자로 태어났다. 누군들 부자 나라에 태어나지 않고 싶었겠는가. 누군들 부유한 집안에 품위 있는 부모의 자녀로 태어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내가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가정에 태어난 것은 운명일 뿐 노력의 결과물이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나라 출신인가에 따라 사람은 다른 대접을 받는다.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는가에 따라서도 심한 차별을 받는다. 기근에 시달리는 불행한 나라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고된 인생을 살아야 하는 것만으로도 억울한데 그 나라 출신이라는 이유로 멸시당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다. 오히려 위로받고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차별과 멸시로 고통받고 있다. 극빈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열악한 환경에서 태어나 그 환경을 극복하고 일어서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평생 고통의 굴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덕거리다가 생을 마감하는 일이 다반사다. 그렇지만 사회는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기는커녕 발목을 잡기 일쑤다. 너의 불행은 운명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신이 누리는 혜택이 혜택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연한 자신의 권리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전 국민의 5%가량인 250만명 안팎의 장애인이 있다. 이들 중 장애인이 되고 싶어 장애인이 된 사례는 없다. 10%가량은 선천적으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경우이고, 나머지 90%는 살면서 질병이나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갖게 된 것으로 보면 된다.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살아가기란 절대 녹록지 않다. 이 사회의 모든 시스템이 장애가 없는 95%에 맞춰있기 때문이다. 5%에 속하는 장애인은 95%에 맞춰 설계된 사회 시스템에서 불편하게 살아야 한다. 그것만도 억울한데 차별과 멸시를 당해야 한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이 제정되고, 2008년부터 발효됐으니 벌써 13년의 세월이 흘렀다. 장차법의 영향으로 이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미약하나마 시작되었고, 장애인을 위한 각종 시책이 마련됐다. 하지만 5% 장애인이 차별을 느끼지 않고 살기에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다. 실례로 뉴스에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수어방송을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이고 그나마 공영방송에서만 시작되었다. 뉴스를 제외한 여타의 방송은 시작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이 소수이기 때문이다.

지체장애인이 불편 없이 탈 수 있는 저상 시내버스는 아직도 보급률이 바닥 수준이고, 대도시를 제외한 농어촌지역으로 가면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기차나 지하철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 시내버스도 보급이 저조한 가운데 저상버스를 도입해 장애인의 불편을 줄이려는 최소한의 노력은 하고 있다. 하지만 고속버스나 시외버스는 여전히 장애인 편의를 보장할 수 있는 버스의 도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본적인 이동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95%가 불평이 없다면 5%는 불편해도 그냥 살아가면 되는 것인가? ‘모든 국민’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갖는다는 헌법 제10조 조항은 허울뿐인가? 전 국민의 5%가 아니라 단 1%라고 해도 그들은 부정할 수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다수만 행복하면 소수의 행복은 뒤로 미뤄도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소수도 대한민국의 주권을 행사하는 당당한 국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소수를 배려하는 사회가 진정 아름다운 사회다. 5%도 불편하지 않게 살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