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의 아버지 문종은 늘 병약한 인물로 그려졌다. 그러나 실록에서의 문종은 세자로 있던 29년 동안 가히 범접불가의 카리스마와 문무겸비로 동생 수양대군을 비롯한 그 어떤 동생들도 감히 그를 넘보지 못하던 강력한 존재였고, 아버지 세종의 말년 7년은 실질적으론 세자 문종이 통치했을 만큼 위대했다. 그러나 잇따른 국상을 치르며 쇠약해져 정작 본인의 재위 기간이 짧았던 탓에, 사극에서는 병석에 누워 드센 동생인 수양대군에게 아들 단종을 지켜달라 애원하는 나약한 군주로 그려진다.
클래식에서 가장 유명한 허구적 설정은 천재 모차르트와 궁정악장 살리에리의 라이벌 구도와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음모론이다. 모차르트 사망 당시 온갖 ‘썰’들이 시중에 난무했는데, 몇몇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모차르트 사후 반세기도 되기 전에 러시아의 대문호 푸쉬킨의 손을 거쳐 ‘모차르트와 살리에리’라는 희곡으로 탄생한다. 희곡에서 살리에리는 신이 내린 천재성을 지니지 못한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자신이 쓴 곡을 봐 달라며 모차르트를 찾아가서 독이 든 술을 먹인다. 당시 시중에 떠돌던 근거 없는 독살설에 기초한 것인데, 이 작품이 성공을 거두자 이번엔 또 다른 2차 창작물이 반세기 후 나온다. 같은 러시아의 작곡가 림스키 코르사코프가 같은 제목의 심리극 오페라를 만든 것이다. 실체가 없던 모차르트의 독살설은 이제 정설이 되어가고 있었고, 또 한 세기가 지나기 전에 이 오페라를 본 극작가 피터 셰퍼에 의해 희곡 ‘아마데우스’라는 걸작 심리극이 탄생한다. 여기선 쇠약한 모차르트가 죽은 자를 위한 진혼곡(레퀴엠)을 작곡하는 설정과 이 진혼곡을 위촉한 사람이 사실은 변장한 살리에리였다는 그럴듯한 설정이 더해진다. 자신의 장례식에 쓸 진혼곡을 직접 작곡하며 죽어가는 모차르트의 모습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이를 그려낸 삽화들이 난무했다. 셰퍼의 초판 발행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 영화감독 밀로스 포먼은 이를 토대로 영화 ‘아마데우스’를 찍는다. 여기선 살리에리가 공들여 키워놓은 프리마돈나를 모차르트에게 빼앗기고, 자신이 작곡한 모차르트 환영곡이 모차르트에 의해 조롱당하며 ‘피가로의 결혼’ 아리아 주제로 즉석에서 변주당하는 꼴을 지켜보는 질투심에 가득 찬 노 작곡가라는 설정이 추가된다. 이 모든 일이 모차르트 사후 200년도 채 되지 않아 일어났다. 엄청난 덧붙이기 나비효과다.
스페인판 사도세자 돈 카를로스의 경우는 더하다. 정책적 근친혼이 행해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세자 돈카를로스는 유전적 정신질환을 갖고 태어났는데, 결국은 온갖 기행을 일삼다가 국가전복 반란에 연루되어 아버지로부터 성탑에 유폐되어서 폭식과 찬 음식만 찾다가 위장병으로 숨지는게 정사의 기록이다. 돈 카를로스 생전에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딸 엘리자베트와 혼담이 있었으나 그녀는 정략결혼 측면에서 왕세자빈보다 더 높은 왕비로서 아버지 펠리페 2세의 부인이 되었다.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돈카를로스를 새어머니인 엘리자베트가 측은히 여겨 잘해줬다는 궁중 미담은, 갑자기 동갑내기인 왕비와 왕세자 사이에 뭔 일이 있지 않았겠냐는 ‘썰’로 비화하고, 이번에는 독일의 대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에 의해 소설로 탄생한다. 이제 돈카를로스는 아버지에게 연인을 빼앗긴 비운의 왕세자가 되었고, 여기에 기초한 베르디의 걸작 오페라 ‘돈 카를로’에서는 가공의 인물 로드리고 후작과 돈 카를로가 억압받는 플랑드르를 구원하기 위해 나서다 친구 로드리고는 죽고, 돈카를로스는 할아버지 영에 이끌려 탈출한다. 역설적으로 이 오페라에서 가장 유명한 곡들은 정작 주인공 돈 카를로의 노래가 아니다. 아들을 사랑하는 아내를 향한 아버지 펠리페 2세의 구슬픈 아리아와 총격에 죽어가는 로드리고 후작의 브로맨스 가득한 아리아가 가장 유명하고 또 자주 연주된다. 둘 다 허구와 가공의 인물인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