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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인가 신분인가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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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0.24 12:03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대한민국 헌법에는 ‘모든 국민’이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모든 국민’이란 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평등을 강조하는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하다. 국민으로서 권리나 의무를 수행함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같은 권리와 의무를 부여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주어진 권리와 의무가 같다는 것은 평등사회의 기본이다. 과거 신분질서가 사회의 근간이던 시절에는 신분마다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가 달랐다. 그러니 평등하지 못했다.

과거 신분사회에는 귀족에게는 많은 권리가 부여됐지만, 그들이 부담해야 하는 의무는 적었다. 반대로 평민이나 천민에게는 의무를 잔뜩 부과하면서도 대단히 제한적인 권리를 부여했다. 인류의 행적이 남아있는 역사를 대략 5000년으로 잡고 이러한 신분사회는 4900년간 지속했다. 모두가 평등한 권리와 의무 속에 살기 시작한 것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100년이 조금 넘을 뿐이다. 불평등의 세월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유전인자 속에 불평등의 DNA가 자리 잡았는지 평등을 불편해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는 관대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다수에게는 가혹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다. 그것은 ‘높은 지위’가 ‘신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부여된 사회적 위치는 그가 수행해야 할 ‘역할’일 뿐 그 자체가 ‘신분’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란 자리는 국가를 통치하는 역할이 부여된 자리일 뿐 그 자체가 신분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이면 대통령의 업무를 수행하면 된다. 물론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재임 기간에만 그에 걸맞은 권한이 주어진다.

역할은 ‘마땅히 하여야 할 맡은 바 직책이나 임무’로 연극에서 각자에게 부여된 배역과 같은 것이다. 반면 신분은 ‘개인의 사회적인 위치나 계급’을 의미한다. 평등사상에 입각한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도래하기 전인 봉건사회에서는 사회관계를 구성하는 서열로 제도상 등급으로 혈통이나 가문 등 여러 요인에 따라 몇 개의 등급으로 사람을 구분했으니 그것이 신분이다. 신분은 제도적으로 등급에 따라 권리와 의무가 다르며 세습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니 현대사회에서는 수용될 수 없다.

어떤 조직에서 누군가에게 ‘과장’이란 자리가 주어졌다면 그는 과장이란 역할을 해야 한다. 물론 과장직을 수행하기 위해 그에게는 그에 맞는 권리와 권한이 주어진다. 과장이란 자리가 그의 신분이 될 수 없다. 그러니 특권이 부여돼서도 안 되고, 그 역할이 세습돼도 안 된다. 다만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도록 그에게 주어진 권리를 인정하고 협조해야 한다. 권리를 인정하고 협조하는 것이 굴종이 돼서는 안 된다. 신분제도가 붕괴한 현대사회를 살아가려면 역할과 신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조선왕조가 무너진 지 100년이 넘었다. 하지만 아직도 ‘역할’을 ‘신분’으로 이해하는 왕조시대의 잔재가 이 나라 국민 다수의 의식 속에 남아있다. 그래서인지 우리의 조직문화에는 수직적 사고가 수평적 사고를 압도하고 있다. 공공조직과 사조직을 불문하고 역할을 신분으로 여기는 풍토가 잔존한다. 과거에 비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그런 풍토가 여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기관이나 조직의 장이 제왕처럼 군림하는 사례가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런 환경에 익숙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간에는 견해 차이가 표출된다.

내년에 대선과 지선이라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선거를 통해 얻은 자리를 신분으로 생각하지 않고 역할로 여기는 이를 가려내야 한다는 점이다. 선거는 누구에게 어떤 역할을 맡길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연극의 총연출자인 감독을 가려내는 선출과정이다. 연출자가 얼마나 완벽하게 역할을 소화해 내느냐에 따라 연극의 성패는 좌우된다. 그래서 연출자를 가려내는 일은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연출자보다 더 중요한 역할이 있으니 그것은 연극을 관람하는 관객이다. 연극은 관객을 위해 존재한다. 모든 관객이 편한 환경에서 진한 감동을 체험할 수 있게 할 능력 있는 연출자를 가려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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