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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잘될 거야!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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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1.16 15:17
  • 기자명 By. 충청신문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신미선 음성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서둘러 퇴근을 하고 집 근처 제과점에 들렀다. 내일이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이라 올해 고등학교 3학년 수험생인 지인의 아이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할 요량이었다. 중학 생활을 마치고 고등학생이 되었다고 내게 근황을 알려오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고3 수험생 신분으로 내일 시험을 보게 되었다니 시간이 참 빠르기도 하다.

제과점 안으로 들어서자 모서리 한쪽 코너에 알록달록 수능 선물 세트들이 다양하기도 하다. 연필 모양으로 포장된 예쁜 초콜릿과 색색의 찹쌀떡, 마들렌, 재치 넘치는 문구를 넣은 엿 등 다양한 구성으로 수험생을 응원하는 선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듣기만 해도 힘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는 센스있는 응원의 문구들도 참 잘 지어놓았다.

어느 해인가 우리 집 아이도 수험생 신분이었다. 그리고 수능 하루 전날까지 여기저기서 합격 기원의 선물들이 들어왔다. 학교 후배들은 시험 앞둔 선배를 위해 술술 잘 풀리라며 휴지를, 꼭! 꼭! 정답만 찍으라며 포크를, 찹쌀떡과 엿은 물론이고 손수 써 내려간 장문의 편지까지 내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한 이력을 보는 것만 같았다. 남편의 사무실에서도 잊지 않고 선물을 보내왔고 나의 직장동료들도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마음을 표시했다. 감사함이 참 많은 그해 겨울이었다.

혹독한 고3 수험생 시절의 아들은 고슴도치가 가시를 세우듯 까칠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집안의 서열 순위를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텔레비전에서도 연일 수험생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소개되었다. 앞으로 며칠 남았다는 둥, 수험생을 위한 건강관리법 등 세상은 온통 이들을 위해서만 돌아가는 거대한 시계 같았다. 얼른 수능일이 지나가기를 바랐다. 까칠함은 사라지고 예전의 그 다정다감한 봄날의 아지랑이 같은 아이로 돌아와 주기를 얼마나 기다렸던지.

그런데 대학수학능력평가 날짜를 열두 시간 앞두고 교육부는 시험을 일주일 연기시켰다. 포항지역에 지진이 일어났기 때문이란다. 대중매체에서는 1994년 대학수학능력평가 시험제도가 시행된 이래 자연재해로 시험이 미뤄진 초유의 사태라며 특보로 보도했다. 그야말로 ‘하필이면’이었지만 재해 지역의 피해는 생각보다 깊었고 공포에 휩싸인 사람들의 불안감은 내 아이의 시험보다 훨씬 중요한 삶의 문제가 아니던가. 유보된 시험일로 수험생들은 더는 보지 않으리라 던져버렸던 책들을 되찾느라 학교 쓰레기장을 헤집으며 야단법석의 진풍경들이 이곳저곳에서 목격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그해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시작되었다. 그날 아침 아이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가방을 챙기는 와중에도 편지 한 통을 무심한 듯 식탁 위에 툭 올려놓고 시험장으로 나갔다. 봉투 겉면에 ‘엄마에게’라는 글자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렌다. 낯익은 글씨를 읽어 내려가며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다가, 차츰 웃음이 나오다가, 어느새 눈물이 났다. 이 녀석과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지나갔다. 몸이 약해 철마다 보약을 해 먹이면서도 ‘공부 그만하고 일찍 자라.’는 말을 아꼈다. 나에게 부모라는 이름을 얻게 해 준 고마운 아이인데 한창 예민하고 중요한 시기에 작은 일탈이라도 보일라치면 미움과 사랑을 뒤섞어 늘 잔소리를 했다.

아직도 이맘때가 되면 그날을 떠올린다. 나의 아들이 그러했듯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나갈 삶의 한 획을 긋는 인생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날, 이 하루를 위해 전국의 고3 수험생들은 지난 한 해 폭풍 같은 시간을 견뎌냈을 것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꼭 필요한 시간이다. 수고했노라고…. 더불어 너희들이 걷고 있는 지금의 이 길이 앞으로 살아갈 인생의 전부가 아니기를 바란다고 말해 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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