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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가? 공평한가?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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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1.21 15:19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공정(公正)’은 대한민국의 관심사다.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공정에 지대한 관심을 둔다. 공정은 ‘공평하고 올바른 것’을 말한다. 우리가 공정에 지대한 관심을 두는 것은 여러 이유가 있지만, 치열한 경쟁 속에 살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살아남아 남보다 더 갖고, 더 유리한 자리에 오르려다 보니 세상에서 벌어지는 경쟁이 공정한가는 늘 초미의 관심이다. 경쟁에서 공정하지 못한 일이 발생하면 참지 못해 분개하고 그런 감정을 표출한다.

대부분 대한민국 국민은 객관화한 점수로 표출되는 시험을 치러 성적순으로 서열을 매기는 것이 가장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한국인의 시험에 대한 집착은 유별나다. 함께 시험을 치러서 성적순으로 서열을 매기고 그 순서대로 갖고 싶은 것을 갖게 하는 룰(rule)을 신봉한다. 서열을 중시하다 보니 계량화하기 쉬운 객관식 시험을 선호한다. 주관식 시험은 공정에서 벗어날 여지가 크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는다. 오로지 성적을 계량화하고 서열화할 수 있는 객관식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는 굳은 신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생각은 오랜 세월 굳어져 바꾸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경쟁에서 공정보다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이 ‘공평’이란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정한가의 문제는 대단히 지엽적이지만, 공평한가의 문제는 포괄적이다. 공정은 시험이 얼마나 부정 요소 없이 치러졌는가의 문제로 국한되지만, 공평은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회가 얼마나 균등하게 주어졌는가를 살피는 문제이다. 군사학 용어를 굳이 차용해 표현하자면 ‘공정’이 전술급 개념이라면 ‘공평’은 전략급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수천만 원을 들여 족집게 과외를 하고, 완벽한 냉난방 시설이 갖춰진 쾌적한 공간에서 모자람 없이 시험 준비를 하는 이와 모든 문제를 혼자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물론이고 더위나 추위와 사투를 벌여야 하는 공간에서 시험을 준비하는 이의 경쟁이 과연 공평한가. 집 앞에 학원과 독서실이 즐비한 대도시 거주자와 사교육 시설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시골 마을 거주자가 벌이는 시험 경쟁은 공평한가. 공정보다 훨씬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존재하지만, 대부분 한국인은 여기에 큰 관심이 없다.

시험은 문제의 난이도에 따라 울고 웃는 이가 뒤바뀔 수 있다. 객관식 시험은 특히 그러하다. 비슷한 실력의 소유자가 모르는 문제와 부딪혔을 때 찍기의 요행에 의해 합격과 불합격이 정해지는 심각한 모순이다. 하지만 이런 모순은 외면한 채 오로지 부정행위가 있었는가 없었는가에만 집착한다. 불공정보다 더 심각한 불평등의 문제에 귀 기울이는 이는 드물다. 불평등의 문제를 선제적으로 해결한 후에 공정 여부를 살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는 여간해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불평등의 문제는 해결할 엄두를 못 내고 그냥 운명이라고 받아들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무슨 일을 하든 문제가 발생한다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접근해야 한다. 더 멀리 보고, 크게 보고 문제점을 해결하려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사회는 눈앞에 보이는 문제에만 집착한다. 이런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객관식 시험이 가장 공정하다’라고 맹신하게 했다.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방식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객관식 점수를 선호하는 다수 국민의 맹신 앞에 공허한 외침으로만 존재한다. 전술만 승리했다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는 전략에서 승리해야 한다.

공정은 공평과 비교하면 대단히 작은 사안에 지나지 않는다. 공평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공정의 문제를 바로잡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럼에도 공평의 문제보다는 공정의 문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들이 월등히 많다. 그런 가운데 시험 만능주의는 이 사회에 대를 물려가며 고착화하고 있다. 다양한 사고와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다양한 평가 방식과 경쟁 방식은 좀처럼 발을 붙이지 못하는 이유이다. 공정에 대한 무서운 집착이 우리 사회의 변화에 발목을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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