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충청의 문화예술 브랜드 ‘중고제’

최혜진 목원대 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입력 : 2021.11.22 15:41
  • 기자명 By. 충청신문
최혜진 목원대 교수
최혜진 목원대 교수

충청도 사람들은 인심이 좋아 산이 순순하다는 말이 ‘춘향가’에 남아있다. 사람은 산세를 타고 태어난다고 하는 노래다. 하지만 한편으로 양반들이 억세어서 살 수 없다는 말은 ‘흥보가’에 전한다. 흥보가 살만한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며 한 노래다. 청풍명월의 고장, 양반들의 고장, 인심이 좋은 고장인 충청도에 사는 사람들은 속 것을 많이 보여주지 않고, 세속적인 데 영합하지 않으며, 품위있고 절제된 생활과 미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생활 철학을 가지고 있다보니 가지고 있는 보물들을 제대로 자랑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충청지역은 예로부터 영호남에서 서울로 가기 위한 교통의 허브 역할을 해왔다. 물자가 모여 금강이나 내포지역에서 서울까지 운반되는 집산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매우 번성하였다. 충청감영이 있던 홍성, 공주는 전국의 예술인이 모여 실력을 겨루고 서울로 진출하는 교두보 역할을 하던 문화도시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전국의 광대들이 충청도에 자신들의 조직을 만들고 ‘회장’격인 ‘도대방’을 충청도 광대로 했다는 점은 그만큼 충청도 예술인의 위상이 높았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지역적으로 충청도는 언제든 서울로 진출하기 위해 준비를 하는 예비 수도권 역할도 했다. 궁중에서 국가행사가 열릴 때를 대비하여 전국의 광대들이 모여 연습을 하거나 거주를 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충청도의 힘을 바탕으로 피어난, 창조적 예술의 꽃이 중고제라 할 수 있다. 중고제는 원래 판소리 중 고제를 바탕으로 이어온 유서깊은 소리를 이르는 것이다. 하지만 고제라 하는 것이 명창들마다 개성적인 소리를 하면서 발전했기 때문에, 어느 순간 법제화된 소리가 태어나게 되었는데, 이를 중고제라 할 수 있다. 중고제의 시조로 염계달, 김성옥을 꼽는다. 하지만 이보다 앞서 최초의 판소리 명창 역시 결성의 최예운, 목천의 하한담으로 지목되고 있어서 판소리는 충청지역에서 본격적으로 탄생한 것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이다.

판소리로 시작된 중고제의 맥은 논산 강경을 뿌리로 하고 있다. 강경의 옥녀봉에 살던 김성옥(1795-1828)은 계룡산에서 10년 독공 끝에 명창이 되어 활동했지만 병을 얻어 아깝게 요절했다. 하지만 처남들이었던 송흥록, 송광록 명창이 김성옥에게 배운 바를 발전시켜 나가 동편제를 이루었고, 그 아들 김정근과 손자 김창룡 등은 가문에서 소리를 전승해가면서 중고제 적통을 이어갔다. 김정근은 이동백, 김창룡, 황호통 등 당대 명창들의 스승이었으며, 자신도 명창으로 유명했다. 근대 5명창으로 일제강점기에 전국을 호령했던 김창룡은 김성옥의 손자다. 이들의 소리를 중고제 ‘표준’으로 하여 현재까지 중고제가 미약하나마 전승이 되고 있는 것이다.

중고제 명창들은 가문을 이어가면서 소리는 물론, 고법, 춤, 산조, 병창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파생시켰다. 고수로 유명했던 홍성의 한성준은 조선춤을 집대성하며 많은 제자를 길러 ‘한성준제 춤’이 현재도 이어지고 있으며, 공주의 명창 김석창은 아들 김덕순, 손녀 김숙자를 통해 ‘김숙자류 춤’을 만들었다. 서산 심정순 가계의 ‘승무’ ‘가야금병창’ ‘가야금산조’ 역시 명창 가문 안에서 태어난 것이다. 이외에도 강경의 백낙준은 거문고 산조를 만들었으며, 청주에서 박팔괘는 가야금 산조와 병창을 만들었다. 이들의 예술을 우리는 ‘중고제 가무악’으로 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충청에서 만들어진 예술 브랜드인 것이다.

충남문화재단에서는 지난 2016년 이후 ‘중고제 맥잇기’ 사업을 기획사업으로 하여 공연과 세미나를 통해 도민들에게 중고제를 알려왔다. 그리고 이 사업은 현재 ‘중고제 르네상스’ 사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올해는 중고제 전승을 활성화하기 위한 중장기 발전계획 용역을 하는 동시에, 판소리 복원 공모를 통해 젊은 소리꾼 7명을 선발하여 소리극을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도민들이 ‘중고제’를 문화적 자부심으로 느끼고 향유하는 기회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우리 문화예술 정체성을 확립하고 예술적 상품으로 발전시켜 나가기에 관련 예산은 턱없이 부족하다. 서편제나 동편제 소리축제 한 건의 예산에 비해, 절반도 안되는 적은 예산으로 1년 전체 사업을 운영하고 있으니, 갈 길이 멀고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충남도 각 지자체는 충청의 문화예술 브랜드 중고제를 전승 향유하기 위해, 합심하여 거버넌스 구축과 예산 책정 등에 힘을 실어야 한다. 이러한 합심 노력만이 우리 중고제를 살리고 나아가 전통예술 전체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충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충청신문기사 더보기

하단영역

매체정보

  • 대전광역시 중구 동서대로 1337(용두동, 서현빌딩 7층)
  • 대표전화 : 042) 252-0100
  • 팩스 : 042) 533-7473
  • 청소년보호책임자 : 황천규
  • 법인명 : 충청신문
  • 제호 : 충청신문
  • 등록번호 : 대전 가 00006
  • 등록일 : 2005-08-23
  • 발행·편집인 : 이경주
  • 사장 : 김충헌
  • 「열린보도원칙」충청신문은 독자와 취재원 등 뉴스이용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반론이나 정정보도, 추후보도를 요청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두고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고충처리인 : 노경래 (042-255-2580 / nogol69@dailycc.net)
  • Copyright © 2024 충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ilycc@dailycc.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