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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黃昏)과 친구(親舊)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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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1.12.05 15:11
  • 기자명 By. 충청신문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황혼을 국어사전에서는 ‘해가  뉘엿뉘엿하여  어두워질 무렵’이라고 표현하는데 영어에서는‘twilight(트와일라잇)’의 의미를 담고 있다. 즉 밤이 오기 전 땅거미가 내리는 시간, 혹은 희미하게 날이 밝아 올 무렵을 뜻한다.

뱀파이어와 인간의 사랑을 그린 서스펜스 로맨스 ‘트와일라잇’은 한때 뉴욕 타임스와 아마존의 베스트샐러이었고 드라마로 제작된 바도 있다. 아마도 내 기억으로는 나 역시 밤새워가며 이 드라마 전편을 모두 시청한 것 같다.

괴테는 노인의 삶은 ‘상실의 삶이다’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사람은 늙어가면서 다섯 가지를 상실하며 살아가기 때문인데 건강과 돈, 일과 친구 그리고 꿈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무심코 12월, 무엇이든 정리가 필요하다. 나 자신부터 나를 둘러싼 조직까지, 마무리이다. 기말고사가 코앞이다 보니 학생들의 최종성적표도 제출해야 하고 늦었지만, 반드시 가정주부로서 올해 김장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해 동안 서먹하게 지내왔던 동료 교수에게도 먼저 밥 한번 먹자고 고개를 내밀고 좋은 관계로 화해해야 할 것 같은데 선뜻 용기가 나질 않아 제일 걱정이다. 나이 들어 가장 큰 적은 고독과 소외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나의 노년을 같이 보낼 좋은 친구를 많이 만들어 두고 싶은데 사실 좋은 친구를 가지기 위해서는 곰곰이 생각해보니 많은 시간과 정성, 그리고 관심과 더러는 가끔 돈도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어느덧 황혼에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늙어가는 것이 서러운 게 아니라,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 서럽다고 하였다. 돌아다보니 우리네 삶이 긴 것 같았는데 차 한잔 마시고 가는 것과 같아 허무하다고 하였다. 새를 보고 싶거든 나무를 심으라고 하였고 황혼을 외롭지 않게 즐기려면 얽히고설킨 마음을 내려다 놓고 진정한 친구를 가까이 두어야 한다고 하였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말처럼, 상대방을 하루아침에 바꾸긴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음식과 팔자는 길 들일 탓이라고도 하였다. 죽지 않는 자면 누구나가 맞이하게 될 노년,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면 황혼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황혼의 정해진 나이와 증상은 존재하지 않지만, 의미와 가치는 우리네 삶 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신체적으로 건강하면서 가진 것이 많은 ‘시니어’ 인생, ‘액티브 시니어’라는 개념이 더는 낯설지 않은 한국 사회이다.

아침에 동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의 웅장함에 자지러지게  소리치는 멋도 있지만   저녁의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노을 지는 태양의  숭고함에  벅찬 뜨거움을 가슴에 품는 넉넉한 멋도 존재한다. 청년은 도전적이야 하고 중년은 묵직해야 하며 노년은 지혜로워야 한다고 하였다. 그저 내 삶에 있어 마지막 욕심이 있다면 같은 생각으로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함께 걸어갈 친구가 내 곁에 있어 준다면 나의 황혼 선물로는 최고의 행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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