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너머 너른 들녘으로 봄기운이 완연하다. 농부의 발자국을 듣기라도 한 듯 반쯤 열린 비닐하우스 안에는 이름 모를 모종들이 푸릇푸릇 초록으로 짙어가고, 바람에 흔들리는 산수유나무엔 가지마다 노란 파스텔 꽃눈을 달기 시작했다. 과거의 생이 있었으리라 짐작조차 어려운 고목에서도 스스로 살아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연둣빛 싹이 솟아나고 있다. 아파트 베란다
코로나 19의 확산으로 모두가 고통 받고 있다. 공연 예술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한 달 전부터 공연예술인들은 전화 받는 게 두려울 정도라고 입을 모은다. 걸려오는 전화 족족 공연 취소에 관한 통보나 유감을 전하는 내용이다 보니,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다가도, 이제는 또 취소 통보겠거니 하며 체념하고 전화를 받는 지경이다.보통 공연기획은 짧으면 반년, 길게는 2~3년 전에 준비한다. 이는 공연장 대관과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다. 예술의 전당으로 대표되는 대형 공연장의 대관은 최소 10개월 전에 이미 준비된 기획안을 제출하면 이후
2019년 통계에 따르면 국내 1인 가구 비중이 29.8%로 사상 첫 4인가구를 추월했다. 1인 가구 증가는 저 출산 고령화와 비자발적 1인 가구가 급증한 탓이다.비자발적 1인 가구의 유형을 보면 배우자와의 이혼, 별거 외에 사별이 있다. 또 젊은 층에서 보여주고 있는 4포 세대(연애포기·결혼포기·출산포기·내 집 마련포기)의 만혼과 비혼 등이 1인 가구 급증에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최근의 한 조사에 따르면 건물을 가지고 있으면 일을 하지 않고도 월세로 먹고 살 수 있다는 이유로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에 ‘건물주’가 상위권에
‘늘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라(stay hungry, stay foolish).’ 스티브 잡스가 200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마지막에 한 말이다. 아직도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는 이런 졸업식 명언을 올해 우리나라에서는 아마도 듣지 못할 것 같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졸업식 취소 소식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졸업식 취소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세계적 확산을 감안하면 누구나 예상 가능한 결정이다. 세계의 모든 국가에서 발생한 환자가 1만 명을 넘어섰고, 하루에 확인되는 환자수도 2천명 가까이로 급
너무 많이 말하는 사람(Too Much Talker)의 약자다. 수다쟁이라는 의미에 치환하여 쓰인다. 말이 많아도 너무 많음을 뜻하는 이 단어가 요즘 우리의 문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TV 예능에 두드러진 특징이 있다. 엄청난 양의 자막이다. 2000년대 초반 유럽 유학시절에 어렵게 구한 한국예능 프로그램은 그야말로 혁신이었다. CG
2019년 3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역대 최저인 0.88명을 기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은 1.68명이다. 합계 출산율이 1명 이하인 나라는 OECD 회원국 중 한국이 유일하다.인구절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정부는 수조 원을 쏟아 붓고 있지만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포기)라는 대한민국의 신조어가 있을 만큼 자연적인 인구감소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된다.출생자보다 사망자 수가 많아져 인구감소가 시작되는 재앙적 상황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인구감소와 함께 1인 가구도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1인 가구 증가는 우리나라뿐
무라카미 하루키의 한국어판 소설 제목 얘기가 아니다. ‘공짜보다는 돈 주고 샀을 때 더 소중한 법이다.’ 예전에 저작물의 효용성을 설명할 때 흔하게 들던 예로, 무단복사한 음원이나 불법 제본한 책보다는 자기돈 주고 산 CD 한 장이나 책 한권은 반드시 끝까지 다 듣고 읽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무단복사 한 것보다는 용돈 모아 산 것을 더
여러분은 앤디 모칸(Andy Mochan)의 ‘불타는 갑판’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흔히 위기와 변화 앞에 직면했을 때 자주 인용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2011년 노키아의 최고경영자가 앤디 모칸의 ‘불타는 갑판’ 이야기를 하면서 임직원들의 강력한 변화를 주문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1988년 7월, 영국 스코틀랜드 근해 북해
여름내 변변한 호박 하나 따먹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찬바람 부니 성성하게 덩굴을 뻗고 열매를 맺어 잘 익은 누런 호박 한 덩어리를 땄다. 시일이 짧은데도 기후가 잘 맞아서인지 신통방통 잘 영글었다. 요 녀석을 끌어안고 한참을 닦고 또 닦고 흐뭇해 하다가 올겨울 어떤 요리를 해볼까, 아니면 집안을 꾸미는 장식용으로 쓸까 행복한 고민을 했다. 호박은
대전지역에 꽤 유명한 맛집으로 알려진 국밥집이 있다. 이곳은 음식 말고도 도드라진 특징이 있다. 맛집에 흔한 벽면의 유명인들 시식 후기가 담긴 싸인지 대신 수많은 권고(혹은 경고) 문구가 붙어있다. 손님들에게 해도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알리는 내용을 사안별로 A4지에 써서 코팅을 해서 벽면에 붙여 놓았다, ‘파출소가 가까우니 음주 후 난동금지’부터
우리는 반려동물 1000만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사람보다 반려동물이 더 호강한다고 한다. 반려동물을 위한 장기 보험, 반려동물 전용 간식, 반려동물 전용 호텔, 반려동물 전용 카시트 등등... 그런데 이렇게 호강하는 반려동물과는 달리 해마다 버려지는 유기동물 수도 증가 추세에 있다. 최근 5년간 통계를 보면 해마다 약 8만3000여 마리가
시월은 참 좋다. 나에게 추억과 그리움, 여행, 고독, 만남, 사색이란 선물을 주며 살아온 날들을 회상케 하고 새로운 곳을 찾도록 용기를 준다. 가끔은 테라스에 놓인 의자에 앉아 담장 아래로 펼쳐진 단풍든 담쟁이를 바라보며 사색에 빠지기도 한다. 마음으로 가을여행 하는 시월 어느 날, 아직도 몸살 하는 무늬 벤자민 에게 눈길이 멈췄다.
최근 인터넷상에 유행하는 용어로 ‘직관’이 있다. 사고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알아낸다는 의미의 직관(intuition)이 아니고 ‘직접 관람하다’의 줄임말로 스포츠경기나 콘서트를 직접 찾아가서 본다는 뜻이다. 반대로 ‘집에서 관람한다’는 ‘집관’이라 부르면서 나름 운율까지 맞춰가며 즐겨 쓰인다. 직관은 여러모로 품이 많이 든다. 우선 해당 장소까
살아 있는 모든 생물(生物)에는 일정한 수명(壽命)이 있다. 엽록체가 있어서 광합성을 하는 식물이나 생로병사의 과정을 거치는 동물들이나 마찬가지다. 식물이나 동물이 아닌 돈에도 일정한 수명이 있다. 우리는 흔히 ‘돈’을 ‘지폐’ 또는 ‘화폐’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인 지폐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들어있다. 우리나라 지폐 천원 권에는 퇴계 이황, 오천원권 앞면에는 율곡 이이와 오죽헌, 만 원권에는 세종대왕이 자리 잡고 있다. 가장 큰 액수인 오만원권 앞면에는 신사임당이 있다. 경제 활동의 기본은 돈이다. 모
길가 은행나무 열매는 가을빛을 담아 노릇노릇 익어가고 뚝갈과 등골나물의 흰 꽃은 메밀밭을 연상케 합니다. 큰 솔나리도 첫 번째 피우는 꽃에게 한껏 정열을 담아 렌즈에 담아내기 어려운 붉은 꽃을 피웠습니다. 남아있는 늦더위에는 붉은 꽃이 도는 석산이 피고 철 이른 가을에는 누린내 풀같은보랏빛 꽃들이 섞어가며 피고 환절기에는 노란 꽃들도 따라서 피지요.
추석전후로 볼 만한 영화를 둘러보니 온통 리부트와 리메이크 투성이다. 문득 올 초 미국의 한 극장가에 걸린 리메이크 천지의 상영작 리스트를 본 네티즌이 댓글이 떠오른다. ‘혹시 지금 1990년대인거야?’ 리부트(Reboot)는 시리즈의 연속성을 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 시절 즐겨보던 시리즈 영화가 2편, 3편,. 그렇게 숫자가 커져
지난 6일 오전 10시 전 국민의 시선이 국회 인사 청문회장에 앉아 있는 한 사람에게 쏠렸다. 한 달간 뉴스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었다.더운 여름 날씨에 국민들의 불쾌지수를 부글부글 끓게 만들며 연일 고통·분노·분열로 빠져들게 한 남자였다. 그는 바로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국씨 였다.이날 국회 인사 청문회는 한 나라의 장관을 검증하는 정책 검증의 자리가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이념과 정파에 의해 둘로 쪼개져 힘겨루기를 하는 싸움터였다.조 후보자 딸의 입시와 장학금 특혜 의혹, 가족의 사모펀드 투자 의혹, 가족이 ‘셀프소송’을 통해
조선시대 최고의 소신과 관용의 리더십을 갖춘 명재상이 있다. 청백리이자 명재상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며 오늘날에도 존경받는 조선조 최장수 재상이다. 조선 초기 격랑 속에서 4명의 임금을 모시면서 천민들의 인권을 개선시키고 경제 법전을 마련했다. 그가 바로 ‘황희’다.그에 대한 일화는 숱하게 많지만 대부분은 청빈함을 강조하거나 관용과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련된 것이다. 작금의 한·일 관계의 격랑 속에서 다시금 그의 리더십을 생각하면서 일화 하나를 생각해 본다.황희 대감댁에서 두 여종이 심하게 다투었다. 그리고 한 여종이 대감에게 자기가
풀 향기가 상그러운 아침입니다. 삶터로 가기위하여 밖으로 나오는데 수생식물을 심어놓은 함지가 바싹 말라 있습니다.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가시연은 자잘한 풀들에 덮여있고 어리연과 노랑어리연이 심긴 곳은 자작하게 물기가 있네요. 지난해에는 예쁜 모습의 꽃을 매일 보여주었는데 바쁜 것을 핑계로 소홀히 대하니 한두 송이 꽃이 보일 뿐입니다. 어리연
비누오페라(Soap Opera). 굳이 번역하자면 막장드라마 정도 되겠다.왜 하필 비누냐면 미국에서도 아침시간대 막장드라마가 주부들에게 인기가 많다 보니 중간광고에 비누나 세제 광고협찬이 많아 자연스레 비누오페라로 불리게 되었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막장드라마는 매우 유용한 아이템이다. 신분상승을 겪어내는 신데렐라 스토리는 물론이고, 불륜과 출생의 비밀이 빠지면 섭섭할 정도다. 사건의 발단은 항상 귀갓길 동행을 누군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되고, 등장인물간 대화를 엿들어 이를 통해 모략을 꾸미는 모습은 기본 클리셰로 자리 잡았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할 경우 참전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젊은층(20·30대) 비율이 약 44%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달 18일 자유민주연구원과 국회자유포럼이 여론조사 기관 ‘공정’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ARS 전화조사를 실시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북한 도발에 의한 전쟁 발생 시 대응’을 묻는 질문에
어린 내 손에 쇠뜨기를 뜯어먹는 소의 고삐가 들려질 때가 있었다.그 때의 초 여름날, 해 저녁에 할아버지께서는 지친 암소를 몰고 들녘으로 나가신다. 온종일 부려 먹은 순한 암소를 싱싱한 풀밭에 풀어놓으면 이리저리 다니면서 저 혼자 풀을 뜯어먹는다. 쪼그만 나는 소가 달아날까봐 고삐를 잡고 있으면 할아버지는 “우리 소는 순해서 도망가지 않으니 내버려둬라” 하신다. 정말로 순했던 것 같다. 놀이거리가 없는 바쁜 농사철에는 부모님의 일손을 돕는답시고 우리또래 몇 명은 제각기 소를 끌고 다니며 풀을 뜯어 먹게 한다. 얼마쯤 지나면 소를 밭
조선시대 후기에 등장한 전기수라는 직종의 정체는 이야기꾼이다. 홍길동전등의 한글소설이 등장하자 장터에서 이를 읽어주고, 삼국지 같은 중국고전을 전하기도 하며 지금의 영화관처럼 장르별 문학을 전파하는 역할이었다. 서양에는 고대 그리스와 중세시대에 음유시인이라고 해서 여기에 노래와 시 낭독까지 포함했다. 주로 오디세이나 플루타르크 영웅전 등 대중이 좋아하는 영웅담 등이 주요 레퍼토리였고 우리나라의 판소리 같은 1인극 모노드라마의 형식으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문맹인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접하기에 이만한 문화생활도 없었으니
전국 대학교에는 약 7만6000여명(2017년 기준)의 시간 강사가 있다. 이들 강사들은 대학 측에서 정한 일정한 규정에 따라 시간강사로 위촉돼 강의를 진행한다. 이들의 강의료는 원천 징수되는 세금을 빼면 시간당 약 10만 원 가량으로 알려졌다. 베스트셀러 작가 등 이른바 A급으로 분류된 강사들은 한 회당 500~600만 원쯤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개그맨 김제동이 15일 대전 한남대에서 청소년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1시간 30분 강연에 1550만원을 받기로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다. 대덕구가 ‘대덕구와 김제동이
모처럼 한가한 일요일이다. 아침을 먹고 뒷산에 올랐다. 6월의 산은 벌써 초록과 초록이 어우러져 갈맷빛을 이루고 있다.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식물들을 보니 그 조화가 아름답다. 함께 하면 무엇이든 새로움을 만든다. 소나무는 오르는 덩굴을 거부 하지 않았고 덩굴은 나무를 타고 더 높고 넓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에서 내려와 마시는 냉커피 한잔이 그래서 오늘 따라 유난히 맛있다.천 염색을 했다. 그 동안 인터넷 카페에서 마음에 드는 옷을 몇 개 샀었다. 착한 가격으로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