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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송구영신

안순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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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6.12.29 17:43
  • 기자명 By. 충청신문
▲ 안 순 택 논설실장
[충청신문=안순택 논설실장] 만약 시절에 빛깔이 있다면 세밑은 회색일 거라 생각해왔습니다. 우중충한 날씨나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나무들의 을씨년스런 풍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한 해의 끝이 눈앞에 다가오면 마음은 공연히 바쁘고 초조해지는 반면, 미진한 성취감에 아쉬움이 더 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처지고 무겁게 가라앉는 느낌, 새로운 해를 겨냥하면서, 잠시 스스로를 되새겨보는 시간의 빛깔, 그런 심상(心象)의 풍경이 회색으로 칠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올해 세밑은 회색이 아니라 밝은 주황색입니다. 촛불의 빛깔입니다. 따뜻하고 포근합니다. 희망을 품은 웃음 같은 색깔입니다.
 
바다를 이룬 광장의 촛불은 승리했고, 분노를 미래에 대한 기대로 바꿔놓았습니다. 촛불을 손에 든 날에 찬사를 보내는 주황색입니다.
 
‘이게 나라냐’ 하고 가슴을 치던 분노가 식은 건 아닙니다. ‘슬픔도 노여움도 없이 살아가는 자는 조국을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네프라소프의 시구는 여전히 선명합니다.
 
모레면 새해 첫날입니다. 새로운 삶과 새로운 세상을 맞고 싶다는 의욕이 피어납니다. 시간의 흐름에 어디 마디가 있겠습니까마는 낡은 걸 끊고 새 것을 잇대면서 우리는 뭔가 희망의 지평이 열릴 거란 기대를 갖습니다. 지난해가 악몽이었으므로, 절망의 터널로 돌진하는 급행열차였으므로, 이 급행열차가 터널의 초입을 겨우 통과하고 있을지라도 악몽과 단절하고 어떻게든 희망을 잡아보려 마음을 다잡는 게 보통 사람들의 새해맞이입니다. 송구영신(送舊迎新)은 현실을 바꿔보려는 소망의 표현이고, 헌 것에 새 것이 오염되지 않게 하려는 경계 의식입니다.
 
새해엔 우리나라에 드리워진 그늘을 벗겨내고 환한 빛이 드는 날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온전한 나라, 공정한 나라는 그냥 주어지진 않습니다. 촛불 켠 마음들이, 그 간절한 마음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보겠다는 소망이 모여 우리를 덮고 있는 어둠을 몰아낼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것입니다.
 
물론 설에 어울리는 얘기입니다만 옛 사람들은 섣달그믐날, 부엌 헛간 샘가 도장 마루밑 뒤란 측간 외양간 어느 한 구석 어두운 곳 하나 없이 등불을 밝히는 ‘조허모’(照虛耗)를 하고 새해를 맞았습니다. 삿된 기운이 어느 한 곳 발붙이지 못하도록 쫓는 의식입니다.
 
특검 수사를 지켜보면서 무엇이 잘못되어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돌아봐야 하겠습니다. 탄식하고 반성하면서 다시는 삿된 일이 끼어들지 못하도록 낱낱이 몰아내야 하겠습니다. 
 
내년엔 내가 대통령이로라 하는 이들이 나와 다투고 서로를 견줄 것입니다. 그들이 쏟아내는 허황된 말, 국민을 속이려 혹세무민하는 행위들, 미혹 같은 것도 삿된 일입니다. 촛불을 드리워 밝게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랏일을 자신과 정파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 드는지 촛불을 밝혀 냉철하게 보아야 합니다. 누가 지금의 상황을 정파적 이득으로 챙기려드는 ‘정치가’(Politician)인지, 국익과 국민을 위해 행동하는 ‘국가인’(Stateman)인지 가리기 위해 촛불을 훤히 밝혀 놓아야 하겠습니다.
 
새날 새달 새해를 맞아 새 사람으로 거듭 나고 싶은 나는 자신도 돌아봅니다. 내 욕심 채우려 억지를 부리진 않았는지,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감추고 얼굴은 미소 짓는 위선을 떨진 않았는지, 상대의 마음은 헤아리지 않은 채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 말을 함부로 하진 않았는지, 애면글면 사느라 스스로 마음과 눈을 닫진 않았는지, 세상의 각박함을 원망하며 시랑처럼 살진 않았는지 반성해 봅니다.
 
그래서 새해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진정성 있게 사랑해 보리라 다짐해 봅니다. 상대가 가족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연인이든 국가든, 그 무엇이든 상관없을 것입니다. 욕심을 비우고 진정으로 사랑함으로써 나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기꺼이 헌신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누군가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향기로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새해 새달 새날, 새롭게 시작하는 시간, 마음가짐도 행동거지도 다 새로워야 합니다. 이왕 켠 촛불로 삿된 일들을 쫓아내고 희망을 나눈다면, 새해엔 따스한 햇살이 새날의 새 기운처럼 엄동의 세상에 비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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