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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시각] 세종시, 좌파가 세운 도시?

안순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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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17.07.20 17:05
  • 기자명 By. 충청신문
 
[충청신문=안순택 논설실장]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죠. 세종시에 가보세요. 이 말을 실감하실 겁니다.
 
어제(20일)는 세종시 즉 행정중심복합도시가 첫 삽을 뜬지 꼭 1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 많던 과수원과 논과 밭, 구릉은 흔적도 없습니다. 정부청사 건물이 들어서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숲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냥갑을 세워놓은 듯한 딱딱한 도시가 아닙니다. 아파트는 높고 낮고, 청사며 대통령기록관, 국립세종도서관, 교량 등 톡톡 튀는 건축물은 강약 중강약 도시에 리듬을 줍니다.
 
시골 촌 동네가 10년 새 인구 26만 명을 품에 안은 첨단도시로 자라난 겁니다.
 
성장통은 꽤나 아팠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신 행정수도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로 격하됐지요, 교육과학중심 기업도시로 성격을 개조하려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그때 거리서명에 삼보일배, 삭발과 단식투쟁을 기억합니다.
 
말도 많았습니다. 좁은 땅덩어리에 무슨 수도가 두 개씩이나 되느냐는 비아냥에 청와대와 정부부처를 떼어놓은 비효율의 극치라는 소리는 지금도 여전히 나오지요. 그 가운데는, ‘좌파가 만든 도시’라는 것도 있습니다.
 
좌파라면 아마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교수를 말하는 걸 겁니다. 세종시 도시 디자인을 설계하는 데 참여했고, 세종시 도시 개념을 국제 공모했을 때 심사위원장이 하비 교수였습니다. 그를 수식하는 말이 ‘마르크스주의 지리학자이자 사회이론가’입니다. 마르크스주의자이니 좌파는 좌파입니다.
 
세종시는 둥근 원 모양입니다. 도심 한 복판에 녹지공간이 있고, 주거지 뒤쪽으로 자연이 둘러싼 ‘이중 환상형 구조’인데, 여기엔 하비 교수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가운데 녹지는 원탁입니다. 시민들은 원탁에 둘러 앉아 있는 겁니다. 원탁에는 상석이 없지요. 탈 중심, 어떤 것도 다른 어떤 걸 지배하지 못하도록 배치한 거지요. ‘좌파’라고 찍는 사람들은 이를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설계’라고 합니다.
 
세종시의 교통난은 이 때문이라고 지적합니다. 세종시는 12차로 이상의 넓은 도로를 내는 대신 4차로 도로를 3개 만드는 ‘분배’ 방식으로 설계됐습니다. 그러니 교통량이 집중되는 도로는 막힐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거꾸로 생각해봅시다. 지금 세계의 도시들은 승용차 운행을 어떻게든 줄이려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도로에 구조물을 놓아 승용차 운행을 불편하게 만들고 심지어 아예 도심엔 들어오지 마라며 외곽에서 막기도 합니다. 걸어서 오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겁니다. 공기의 질을 시민의 삶의 질과 나란히 놓습니다.
 
우리나라 도시들이 너도나도 ‘걷고 싶은 도시’, ‘자전거 도시’라고 자랑하는 건 왜 이겠습니까.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프롤레타리아를 위한 설계’는 달리 말하면 ‘서민 중심의 도시 설계’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좌파’로 찍는 사람들은 정부청사도 못마땅해 합니다. 청사는 마치 용처럼 구불구불 길게 늘어서 있지요. 끝에서 다른 끝까지 3㎞가 넘습니다. 그러니 업무 공간보다 이동 공간이 많다고 툴툴거립니다. 고위 관리 한 분은 “효율성에서 볼 때 철저히 실패한 건물”이라고 했다니 상당히 불편했던 모양입니다.
 
하비 교수는 설명합니다. “식사를 하거나 집무실로 이동할 때도 산을 바라보거나 공기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을 구상했다.”
하비 교수가 옳았다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좌파냐 우파냐 하는 문제도 아닙니다. 좌파가 설계했든 우파가 했든 도시의 변화는 주민들이 이끌고 가는 겁니다. 어떻게 보느냐, 시각의 차이를 말하고자 하는 겁니다.
 
수도권이 무조건 우선이라는 사람들에게 세종시의 변화를 설명해봤자 ‘비효율’만 되뇔 겁니다. 그러나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믿는 저 같은 사람은 세종시의 눈부신 성장이 기특하기 짝이 없습니다.
 
세종시는 착공 10주년이 되는 날 ‘세종시=행정수도’가 새정부 100대 과제에 드는 선물을 받았습니다. 시민들은 헌법에 ‘대한민국 수도는 세종시’ 조항을 넣는 꿈을 꿉니다. 그 꿈이 반드시 이뤄지기를 기원합니다.
 
나라 인구의 절반이 수도권에 모여 살고 그래서 지방은 사람이 없어 ‘소멸’을 걱정하는 지금 세종시가 행정수도가 되어 균형발전의 기치를 다시금 곧추 세웠으면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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