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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일보일경(一步一景)

허영희 대전보건대 간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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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1.12 14:38
  • 기자명 By. 충청신문
요즘 학교일이 바빠지면서 좋아하는 영화를 챙겨보기가 많이 힘들어졌다. 나름 일주일에 한편씩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영화를 보는 것이 소소한 나의 행복이었는데. 이 행복을 포기하고 사는 나 자신이 많이 불쌍하다. 하지만 살다보면 이 정도의 난관은 쉽게 극복해야만 한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일보일경(一步一景)에 대한 해석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네 인생의 묘미는 천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에 한 발 내딛게 되면 거기에 어울리는 것을 찾게 될 것이고 채우게 된다. 그러므로 조급해 하지 않고 언젠가는 한가해질 나의 시간과 여유로움을 기대하면서 다시금 행복해지도록 기다릴 것이다.

오래간만에 작은 딸아이랑 단둘이서 대청호 오백리 둘레길을 자전거를 타고서 한바퀴 여행하기로 했다. 10분정도 달렸는데 아름드리 펼쳐지는 호수의 푸른 물이랑 곳곳에 솟아난 억세 풀,그리고 돌무덤 사이로 간간히 바람들이 들락거리고 있었는데 장관이었다. 그후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눈앞에 펼쳐지는 새로운 풍경들은 신비로운 빛깔의 진한 여운으로 장식되어 졌다. 그러나 가장 놀라운 광경은 좀 전에 스쳤던 느낌과 한걸음 두걸음 옮길 때 마다 보여지는 느낌이 똑같이 않다는 것 이었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卽種種法生)하고 심멸즉종종법멸(心滅卽種種法滅)하라’이 말의 뜻은 억지로라도 쉬어 가라는 의미로 씌여지는 말인데, 세상의 속도에 너무 의탁해서 살지 말고 자신만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야 된다는 뜻이다. 그러고 보니 이때껏 바쁘게 살아온 내 걸음걸이의 보폭은 욕심이고 속도는 허세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무뎌지는 여유로움과 두꺼워지는 부끄러움이 웬지 나의 세월을 숙연하게하고 하고 슬퍼지게 한다.

요사이 동기들끼리 만나서 수다를 떨다보며 정해지는 주제가 늘 ‘여유’에 관한 내용이 된다. 그리고 다들 퇴직하고 나면 무조건으로 유럽이든 한국이든 본인들의 둥지에서 벗어나 1년 정도는 오로지 나만을 위한 쉐어 하우스 생활을 하고 싶다고 한다. 물론 나도 그러하다.

일보일경(一步一景)을 ‘한 걸음 걸을 때 마다 하나씩 보인다’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 말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보이는 경치가 남다름을 강조하는 말이다. 기쁜 마음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도 아주 괜찮을 것 같다. 즉, 10년 후 20년 후 변화된 내 모습, 내 자리의 무게도 중요 하지만 오늘 혹은 그 다음날 마주 하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더욱 소중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각자의 삶의 최종목적지는 다르다. 허지만 행복해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같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매 순간 행복해야 돠고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사는 것이 모두가 가는 길의 목적지이면서 목표가 된다. 사실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것도 예측하지 않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고 작은 일이라도 낙담하지 말고 들뜨지도 말고 어제가 오늘처럼, 오늘이 내일처럼 묵묵히 모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된다. 그리고 변함없이 오늘이 내일처럼 묵묵히 모두의 그 자리에서 또한 일보일경(一步一景)하면 된다. 아울러 치장하지 않은 순수한 나만의 가장 나답게 세상 사람들에게 보답하면 될 것이다.

일보일경(一步一景)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공평하게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므로 일보일경(一步一景)에 순응하면서 살면 된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의 인생이 모두가 삶의 먼 목적지를 꼭 다 알아내고서야 출발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차분히 한걸음 한걸음 하루를 시작하면 되고 받아들이면 행복해 질 것이다. 그러면 진정한 여유가 존재하는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딸 아이가 미리 검색해둔 카페근방까지 자전거에서 내려 총총히 걸어왔는데 모처럼 겨울바람이 상큼하고 따뜻하기만 하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니 하루가 여유롭고 동행해준 딸아이에게도 그저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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