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사태에 따른 경기침체 장기화가 현실이 되자, 정부가 나서 다양한 구호책을 준비하고 있다. 가장 큰 피해가 있는 소상공인과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수혈책을 비롯해 저소득층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방안 등이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 와중에 ‘재난기본소득’ 집행에 대한 논의가 시작돼 다수의 지지를 얻고 있다. 재난 상황이니만큼 지원 대상을 선별하지 말로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을 균등하게 배분해 위기 극복의 마중물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노동윤리에 사로잡혀 있는 다수 국민의 정서가 이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어서, 실제 집행되기까지는 더 많은 사회적 논의를 거쳐야 할 상황이다.
전 국민 누구에게나 기본적 삶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비용을 국가가 제공하는 ‘기본소득’은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겪은 후 수면 위로 유럽 일부 국가를 중심으로 부상한 개념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심각한 소득불균형 상태에 빠져들면서 이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기본소득은 일정 소득이 보장되지 않는 다수의 저소득층을 구제하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무상으로 무언가를 베풀면 수혜자를 폐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란 신념이 유난히 강한 한국인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지만, 이미 세계적 경제 분야 석학들이 적극적 지지를 보내고 있는 개념이다. 깊이 각인된 고정관념으로 인해 우리의 정서가 못 받아들이고 있을 뿐 이미 논의는 시작된 상태이다.
학교 급식 무상화 도입 초기에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 식비를 국가가 지원한다는 사실을 사회적 정서가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다. 교복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을 때는 급식 때보다 저항이 덜했지만 역시 반대의견이 비등했다. 노령연금 지급이 처음 시작될 때도 반대여론은 만만치 않았다. 이 모두가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뿌리 깊은 신념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다수가 우려했던 것처럼 급식과 교복 지원으로 인해 재정이 고갈돼 나라가 망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이제는 모든 국민에게 고르게 복지 혜택이 부여되는 보편적 복지 혜택도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누구도 급식과 교복 지원을 과거로 환원하자고 하지 않는다.
소득 불평등에 대한 대중의 분노는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그 분노를 가장 합리적으로 잠재울 방법 중 하나가 기본소득의 도입이다. 우리 국민 중에는 아직도 복지는 유럽 국가들이나 하는 배부른 이야기로 치부하는 이들이 다수다. 국가에 세금을 내는 것은 당연하게 여기면서 국가로부터 다수의 국민이 고르게 혜택을 받는 것을 죄악시하는 고정관념이 다수의 국민 머릿속에 깊이 각인돼있다. 그런 고정관념은 기본소득 도입을 비롯한 복지의 외연 확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상 재원 마련보다 더 큰 문제가 기본소득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국민의 의식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우리 사회에는 큰 변화를 맞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재난기본소득에 대한 의식변화일 것이다. 일부 지자체가 모든 지역민에게 일괄적으로 재난 극복을 위한 기본소득을 지급하기로 했다. 수혜대상을 선별하면서 엄청난 시간과 행정력이 소모될 수 있고, 간발의 차이로 지급 대상에서 제외된 이들이 불만을 품지 않게 하려고, 전 국민에 고르게 재난기본소득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기회를 계기로 기본소득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재원을 마련할 확실한 방안만 있다면 기본소득이야말로 선진 복지행정의 선구책이라 할 수 있다. 한국이라고 늘 선진국의 뒤만 따라야 하나? 이번 기회에 한국이 기본소득 도입을 선도해 모범적 사례를 선보이는 것도 생각해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