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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소리가 온다] ③ 이진우의 ‘흥보가’

최혜진 목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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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8.26 16:23
  • 기자명 By. 홍석원 기자
최혜진 목원대 교수
최혜진 목원대 교수
올해만큼 문화예술 종사자들이 힘든 적이 있을까 싶다. 코로나 사태로 상반기 공연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어 재난지원금으로 풀칠을 하는 예술가들이 많았다. 간신히 미룬 공연들을 이제 좀 하려나 했더니 다시 주저앉은 형국이다. 그러나 어쩌랴 사회적 거리두기만이 코로나를 예방하는 길인 것을.

지난 8월 20일 두 번째로 진행된 대전시립연정국악원 기획 판소리 다섯마당 젊은 소리꾼 시리즈는 전태원의 ‘심청가’였다. 이미 그보다 며칠 전부터 코로나가 확산을 시작했기에 많은 관객들이 관람을 취소했고, 30-40명의 관객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공연이 취소되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무대에 오른 소리꾼 전태원은 ‘심청가’ 주요 대목을 이어가며 출중한 소리를 선보였다. 그러나 더 출중했던 것은 그날 오신 대전의 귀명창들이었다.

열화와 같은 박수, 마스크를 뚫고 비상하는 우람한 추임새, 용기와 위로를 보내는 환호성 등이 80분 동안 쉬지 않고 이어졌고, 급기야 판소리 공연에서 앵콜을 하는 지경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소리판은 명창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청중들이 만든다는 것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던 무대였다. 대전의 귀명창들을 위해서라도 공연은 쉼없이 이어져야 한다.

머지 않은 9월 3일에는 이진우의 ‘흥보가’가 예정되어 있다. 이리 엄중한 시기이니 아마도 무관중 온라인 공연이 될 가능성이 크다. 무관중이라는 악조건 속에서 공연해야 하는 부담이 있지만, 오히려 온라인 영상으로 공연이 소개되니 여러 이점도 있다. 불특정 다수가 어디서든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이 된다는 것은 코로나 시대 새로운 공연 형식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것은 국경을 넘어서는 일이기도 하고 영상 데이터의 축적이라는 면에서도 바람직하다. 과거 공연비를 지불해야만 볼 수 있었던 공연이 무료 개방되고 있는 것이다.

소리꾼 이진우는 어린 시절 대전에서 판소리를 시작한 우리 지역 출신 소리꾼이다. 소리가 신동급이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대가 된다. 서울대 국악과를 수석으로 들어가 공부하더니, 실기로는 부족한 이 시대 국악인들을 위해 행정학 석사까지 취득한 재원이다. 그는 안숙선 명창 아래서 다섯 바탕을 모두 떼어 아주 탄탄한 소리 공력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의 ‘흥보가’는 강도근-안숙선으로 내려오는 유파로 동편제 소리이다. 소설과 달리 판소리에서는 ‘놀보가 박타는 대목’이 축소되거나 없기도 한데, 강도근제 흥보가는 ‘놀보가 제비후리러 가는 대목’에서 끝이 나는 상대적으로 짧은 소리이다.

요즘처럼 어려운 시대에 ‘흥보가’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해주는 우리 시대 걸맞는 판소리라 할 수 있다. 가난한 흥보는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갖은 노동과 설움 속에서 살아나가지만, 부자 놀보는 부모 유산을 독차지하고 그것으로 재산을 불려 혼자서 호의호식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조선후기 서민과 악덕 지주를 상징하고 있지만, 빈익빈 부익부라는 점은 현대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부’의 정도가 ‘행복’과 ‘사람다움’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흥보가’를 통해 배울 수 있다. 가난했지만 선한 성품을 가진 흥보가, 제비는 물론 놀보를 품는 과정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가난하고 무능력해 보인다고 흥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 공동체는 결국 흥보같은 사람들이 있기에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놀보, 제비다리를 제 손수 부러뜨리는 악독함 속에서 어떻게 인간사회가 유지될 수 있겠는가.

제비는 놀보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흥보같은 사람에게 부와 재물이 분배되어야 함을 알려주고 있다. 흥보 박속에서 나온 풍부한 의식주의 세계, 곧 쌀과 돈과 비단과 집은 사람들이 품위있게 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주는 기초적인 물질이다. 그러나 하염없이 쏟아진 이 재물을 흥보는 이웃과 나누며 ‘공생’의 길을 실현했다.

원래 예전의 ‘흥보가’에는 놀보가 박을 한통씩 열며 재물을 뺏기고, 맞기도 하는 등 망하는 과정을 즐겁게 감상하도록 짜여져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놀보의 패망보다는 흥보의 부자되기 과정을 더 강조함으로써, 우리 사회에는 흥보같은 사람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다.

‘흥보가’는 코로나로 팍팍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위로처럼 다가온다. 이진우의 ‘흥보가’를 들으면서 힘들고 서러운 삶 속에서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면 어찌할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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