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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코로나가 선도한 애경사 문화 변혁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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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 2020.09.27 14:21
  • 기자명 By. 충청신문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김도운 한국안드라고지연구소장
한국인의 체면 문화와 과시욕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보편적 한국인에게 자신의 만족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타인의 시선이다. 과거보다 많이 누그러들었다고는 하지만 워낙 뿌리가 깊어 여전히 한국인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다. 외국인은 이해하지 못하는 문화일 수 있지만 적어도 한국인 사이에서는 별다른 설명 없이 통용된다. 실속보다 체면이 중요하다. 고급 위스키나 명품 코트의 수요가 전 세계 1위라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간접 설명해준다.

한국인의 체면 문화와 과시욕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례는 애경사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비롯해 한 가정의 애사나 경사가 발생하면, 그 본질에 충실하기보다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원되고, 얼마나 많은 화환이 전시되는가가 대단히 중요한 평가의 잣대가 된다. 사람이 많고 화환이 많은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치러야 혼주나 상주의 체면이 서는 게 한국 사회이다. 그래서 축하객이나 조문객을 동원해주는 용역회사도 있다고 한다. 자비로 각계인사 명의의 화환을 주문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머릿수를 채워준다는 데 의미를 두고 애사나 경사를 찾는 문화도 만연돼 있다. 식장이 썰렁하면 그 사람 체면이 안 선다는 이유로 불원천리 예식장을 찾아가고 장례식장을 방문한다. 그래서 주말이나 휴일이 되면 결혼식장에 다니는 것이 고역이 된 지 오래다. 결혼식장에 가면 혼주에게 얼굴 한번 비치고는 바로 식당으로 달려가는 자체가 형식주의 문화이다. 주말과 휴일 예식장에 밀려드는 차량으로 근처 도로는 기능이 마비되기 일쑤다. 식당에서는 하객들끼리 어깨를 부딪치며 식사하는 일도 예사가 됐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아까운 주말과 휴일 시간에 쉬지 못하고, 격식 있게 옷을 차려입고 차를 몰고 예식장에 가는 것 자체가 소모적이고 형식적이다. 더구나 가까운 사이도 아니면서 마지못해 참석해야 하는 처지라면 예식장 가는 일은 참으로 고역이다. 장례식장을 찾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밤에 위험한 운전을 해서 먼 거리의 장례식장까지 방문해야 하는 것은 합리적 관점으로 보면 많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내가 큰일을 당했을 때 조문객이 없으면 망신스러울 수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멀리 길을 나선다.

한국사회의 애경사 문화를 개선해야 한다는 데는 대부분 국민이 공감하고 있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지 못하고 있어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일부 상류층이 가족 위주로 작은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르는 사례가 생겨나며 사회에 울림을 주고 있지만, 아직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지 못하고 있다. 뿌리 깊은 체면 문화와 과시욕이란 과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상부상조, 환난상휼의 전통이 부담스러운 굴레가 됐으니 이에 대한 극복이 절실하다.

이 어려운 체면 문화, 머릿수 채워주기 문화의 극복에 숨통을 터준 것은 의외로 코로나바이러스이다. 코로나19의 창궐 이후 애경사에 직접 참석하지 못 하는 것을 관대하게 이해해주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축하객이나 조문객 수가 적어도 흉이 되지 않는 의식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또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혼주나 상주의 계좌로 이체해주는 것이 불경스럽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있다. 애경사를 알리면서 축의금이나 부의금을 받을 은행 계좌번호를 적어 보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코로나 확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나, 이런 상황이 일정 기간 지속되면 자리를 잡아갈 것으로 예상한다. 한 사회에 만연된 문화란 선구자에 의해 개척되고, 다수가 따르면서 정착된다. 그러니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코로나19는 온갖 시련과 아픔을 주었지만, 한편으로는 긍정적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 점도 있다. 애경사 문화를 바꿀 동기 부여를 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이번 기회에 서로에게 부담을 주는 애경사 방문 문화를 본래의 취지에 맞게 긍정적 방향으로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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